본문 바로가기

책 장

오릭맨스티, 최윤.

장편 아닌 장편 소설이다. 전혀 알 수 없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제목만큼이나 담겨 있는 내용은 알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다. 한 부부의 일상에서 현대사회의 삶의 면면을,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한 최윤선생님의 이해를 옅볼 수 있다. 

짧은 호흡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쉽게 한다. 어려운 단어 하나 나오지 않지만 흐름을 쫓는 것 만으로도 생각해 볼 거리는 충분하다. 오감五感에 의한 자극들이 범람하는 시대상, 시대에 함몰되어 생각하지 않는 현대인. 현대인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가 무엇일까?

소설은 짧은 호흡만큼이나 적절한 비유와 묘사를 곁들여 가독성을 높인다. 동시에 격정적인 감정은 배제하였기에 지나친 감정이입으로인한 불편한 독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남에서 시작하여 결혼과 잉태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구질구질한 등장인물들의 삶은 어떠한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두리뭉실한 털옷을 입은 한마리 양처럼 느릿느릿 걸어가며 삶의 문제들을 스리슬쩍 툭툭 건들고 지나간다. 꼬집어 문제제기를 하지도 않고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단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소설 속의 세계에는 현실의 구질구질함이 모두 묻어 있다.

남자도 여자도 잘 알고 있다. 복잡한 질문이 머리를 두드릴 때는 일찍 자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아스피린 한 알 먹고 일찍 자리에 들어 뒤돌아 누워버리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위해 좋다. 미세하지만 감지되는 것,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것을 무시하고 교란하는 것은 주변에 널려 있다.
                                                                                                                       p. 49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나 정보의 범람, 수용이 불가능한 수준의 정보량이 문제일까? 쉽게 건너뛰고 있는 영혼의 사유(추상적인 언어에 대한 생각이라 하겠다. 예를 들자면 생명, 사랑, 만남, 관계 등등),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글은 한걸음씩 나아가며 우리의 일상은 늘 그러한 문제에 부딛혀왔고 그 문제들이 실상은 늘 가까이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 이상은 스포일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가겠다.

일상의 면면은 끊임없이 한 부부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만남, 사랑과 결혼, 생명과 낙태, 행위의 동기와 동기의 발현, 희생과 정화 그리고 돈. 이 모두를 관통하는 선택과정의 사유는 우리 일반과 다를 바 없다.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근래의 소설도 중년에게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개발서도 아닌 이 책은 모두에게 이야기한다. 결국 이러한 삶이 여전히 진행중인 우리의 삶이 아니겠느냐고.. 그럼 한 번쯤은 눈을 뜨고 직시해보지 않겠느냐고.

책의 장수는 적지만 한 권에 담긴 시간은 꽤나 길다. 그 시간을 쫓는 '나'의 시간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수려한 표현이 그를 다 상쇄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등장하는 오릭맨스티, 한국식으로는 다섯글자 알파벳으로는 몇 글자인지는 알 수 없다. 선생님이 기능을 잃은 말이라고 표현한 이 말의 어려움, 그리고 소통의 부재는 이상적인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해가 부족하기에 이 부분은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