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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계속살기

'침대'와 시간

전주에 다녀 온 이후에는 늘 삶이 풍족해진 듯 하다.
팍팍한 도시의 삶에서의 탈출이라든가 지겨워진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도 좋지만
전주라는 도시에서 '나'를 느끼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창 밖으로는 중앙선 지하철이 달린다. 그 너머에는 구르는 자동차 대열이 끊이지 않는다.
직사각형인 내 방에는 침대가 있고 책장이 두개가 있으며 책상과 작은 선반 그리고 오디오와 스탠드가 있다.
작은 선반은 침대 머리맡에 있고, 그 위에는 아담한 사이즈의 오디오와 어느새 9년정도 손때가 묻은 스탠드조명이 올려져 있다. 오디오의 스피커에는 먼지가 다소 내려앉아 있는데 근래에 오디오가 제 몫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대는 누워서 책을 읽기에 적당하고, 선반은 마시던 맥주를 혹은 마시던 차를 잠시 내려두기에 적당하다.
지금은 침대 머리맡에 쿠션을 쌓아두고 허리를 기대어 앉아있다. 책을 읽기에 좋고,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기에 좋다.
허리에 디스크를 앓고 있는 나로서는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지만, 이 고민은 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한발을 나설때까지 비현실적인 문제로만 느껴진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는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은 나쁘지 않지만, 인터넷을 하면서 보낸 시간은 늘 아쉽기만 하다.

시간의 종말, 침대라는 공간에 자리잡은 '나'에게 흐르는 시간은 평소와는 다르다.
분명히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이야기를 읽지만, 사실 현실감은 떨어진다.
침대라는 물건이 그리고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화된 물건의 배치가 주는 시간의 감각은
빠르거나 느리다는 단어로 형용되는 시간과는 다르다.

어느 순간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창 밖이 어둑해지면 밤이 온다는 생각을 한다. 중간 중간 지나가는 지하철의 진동에 이따금 현실로 돌아온다. 종종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곧 시계가 없는 세계로 돌아간다. 책의 주인공이 하는 말의 속도, 내가 소화하는 활자의 양에 비례해 시간은 흐른다.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흐르고, 나는 모두가 속한 삶의 속도를 따르지 않는다. 여유.

늘 시계를 보며 머리속으로는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을 정하고 생각하는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진, 하지만 분명한 삶의 한부분이다. 방의 구석 어딘가에 쌓여있는 희뿌연 먼지와 같을까. 분명히 과학 이론에서는 공유하고 있는 물리법칙속에서는 상대적인 시간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지식을 지혜를 삶을 보고 있는 순간에는 동떨어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 노릇이다.

전주에서 올라온 이후에는 늘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시계의 시간에 거리를 두고, 해가 뜨고, 새가 지저귀고, 배가 고프고, 해가 지는 시간속에 있다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