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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8월자 글쓰기 - 섹스.

1998.04.25, 1998.05.25, 1998.06.25....... 2002.05.25, 2002.06.25, 2002.07.25, 2002.08.25....... 2004.10.25. IMF로부터 79개월, 매달 200만원 그리고 저금 통장에 찍힌 79개의 '송금'이란 글자를 읽고 또 읽었다. 두번, 세번, 네번째로 "1998.04.25 2000000 송금"가 새겨진 통장의 첫 페이지를 펴려 손가락을 움직이던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6년 전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말의 의미가 와 닿았던 그 날에도 손에는 12인승 버스의 열쇠와 이 통장뿐이었다. 비를 뿌릴 것 같던 하늘은 한 두방울 물방울을 흘렸고, 빗물은 통장에 자국을 남겼다. 검정색 글자는 점차 감청색 흔적으로 변해갔다. '6'이 '8'로 '5'가 '6'으로 변하는 과정을 물끄러미 봤다. 한껏 감긴 태엽이 풀리 듯 팔과 다리의 근육이 요동쳤다. 양손으로 통장을 접었고, 이미 다리는 은행 앞에 세워진 12인승 이스타나를 향해 교차하고 있었다.

은회색 97 연식 이스타나의 뒷 창에는 녹색테이프가 붙어 언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한 창을 붙잡고 있었다. 일종의 반창고가 덕지 덕지 붙어 상처를 가리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았다. 이스타나의 앞 범퍼와 뒷좌석으로 통하는 문에는 가리지도 못 할 커다란 긁힌 흔적들이 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뜀박질 속에 빗물이 튀고, 이음새가 헐거워진 갈색 로퍼는 들어오는 빗물을 막지 못했다. 로퍼에 묻은 회갈색 페인트와 상흔을 가리고 있는 녹색테이프는 왜인지 모르게 유사해보였고, 그 주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뒷자석에는 있어야 할 좌석 대신 간이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침대위에 펼쳐진 두꺼운 이불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털들이 엉겨붙어 있었다. 6년 전에 개조된 차 내부에는 냄비 속에 들어가지 못한 라면 부스러기와 흘린 국물자국이 절묘했고, 언제라도 찍찍찍하는 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문을 열고 간이 침대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고, 습관적으로 또 한번 통장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내려 했지만 소매가 해져 빗방울을 닦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장 위의 흐릿해진 감청색 무늬들을 보자 "안돼, 안돼, 안돼."라는 작은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나왔다. 손을 뻗어 검정색 펜을 찾았고, 간이 침대 아래서 찾은 모나미 볼펜으로 선명하고 뚜렷하게 숫자를 새겨 넣었다. 25는 26이면 안됐고, 25여야만 했다. 0은 6개여야만 했고, '송금'이라는 글씨는 '솜긍'이어서는 안됐다. 6월 역시 8월이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힘줘 눌러 쓴 숫자는 모호하지만 뚜렷한 검정색을 드러내 갔다. 작업이 끝난 통장은 덕지덕지 땜질을 한 집 마냥 너덜너덜해졌다.

문득 굵은 빗소리가 차 안을 울리자, 나는 창 밖을 봤다. 차창에는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방울 한 구석이 터져 다른 방울과 합쳐지고, 부서짐을 계속했다. 거센 빗소리가 익숙해질 즈음 계기판 옆에 붙어 있느 사진을 쓰다듬었고, 사진 속의 두아이와 한명의 여자는 그를 보고 활짝 웃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피부는 굳어버려 딱딱한 돌처럼 된지 오래였으며, 손가락 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살이라기 보다는 껍질이 옳았다.

나는 6년간 가족을 이렇게 불러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라고 하루 세번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던가. 내가 전할 수 있던 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세번씩 하루 세번 이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애들의 이름과 여보의 이름은 깊은 동굴 속에 남겨져 있는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잊혀져 있었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미소는 분명 6년동안 마찬가지였다. 내가 간이침대 위에서 새우잠을 청할 때도, 용역업체에서 연락을 받고 아무도 없는 밤의 도로를 달릴 때도, 추운 겨울 날 관리직원이 없는 지하주차장을 찾아 들어갈 때도, 더운 여름 날 주차비 정산원이 출근하기 전에 한강변의 주차장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분명 그렇다고 믿어왔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이었다. 이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6년을 기다렸고, 고대해 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마찬가지로 고대해 왔던 전화다. 019-124-6370이 짙은 녹색으로 찍혀 연한 녹색의 액정 속에서 깜빡였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앞으로 전화를 받지 않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불과 두시간 전이었는데 너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예"라고 말했다. "강거갑씨, 오늘 8시부터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편의점 일 있어요." 전화를 끊고, 사진을 봤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에요? 가족들은 다 어디있는데요?" 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입술을 굳히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 때 떠났어, 아니 떠나보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어. 빚쟁이들은 쫓아오지 갚을 돈은 없지. 다 가압류당하고는 이혼서류 찍을 때 한 번 봤어. 그래야 편하데나 뭐래나." "술이나 한잔 해요." "술 먹은 적 없어. 벌써 언제 술먹었는지 기억이 안나." "바다에서는 조개구이에 소주가 최고에요." 가슴을 들이밀며 말하는 이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거부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야외에 조개구이 집이 있었다. 작은 봉고 버스는 힘겨운 엔진소리를 냈다. 나는 향긋한 구이 냄새를 맡았다. "배고파요, 얼른 먹어요." 차에서 내린 여자는 이미 저만치 가서 손짓을 했다. 조개구이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왜 만나러 안가요?" "뭘." "가족이요, 아까 보니 아직도 사진 붙여두고 있던데." "벌써 6년이나 연락을 안했어. 그렇다고 헤어질 때 다시 나타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애들도 있고, 보고싶지 않아요?" "웬걸. 6년동안 안 만난 친구한테 연락해 봤어? 거기다가 그냥 안보게 된 것도 아니고, 안좋게 끝난 관계 친구? 그만해." 한번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이 멍청한 년, 너같으면 찾아가겠냐. 아니 찾아갈 수 있겠냐. 매일같이 사진보면서 라면만 먹었는데, 그렇게 독하게 갚았는데, 그게 다 돌아가보고 싶어서였는 것도 상상 못하냐. 속죄야 속죄. "소주 하나요." 여자가 말했고, 곧 소주 한병이 상에 올라왔다.

"오랜만에 술 먹는다면서요. 우선 한잔 짠!해요." 술잔을 받아들고 투명한 액체를 빤히 바라봤다. 왜곡되고 뒤틀려 보이는 술잔 뒤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돌아가도 될까. 나를 기다릴까. 딴 남자 만났으면 어쩌지. 애들이 내 얼굴은 기억할까. 나는 술을 마셔도 되는 걸까.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서 빚 다 갚고는 뭐했어요?" "뭐하긴 일했지." "끝이에요?" "끝이지." "뭐에요, 술도 6년만이다, 담배도 안핀다, 무슨 성인군자 났네 났어. 뭔 재미로 살아요, 무슨 중이야? 신부야? 얼른 술이나 한잔 해봐요. 여기까지 와서 안마시면 그게 뭐에요." "이걸 마시면 안 웃을 것 같아." "뭐래, 누가 웃어줬다고. 주사 심해요? 술은 안약하게 생겼는데?" "너 말고 가족이." 라고 말하며 억지로 술을 입에다 털었다. 싸한 냄새, 눈물이 날 듯 했고, 코 끝이 찡했다. 구토감에 어떤 역겨움이 뱃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일종의 수치심과 모욕감이 엄습했다. 7년 전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던 그날 가족들은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가족과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다람쥐같은 애들과 부인의 눈이 감겼을 때 떠나야만 했다.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러 오신 예수님은 정말 성인군자다. 나는 내 죄를 대신하려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 양반은 참 위대했나보다. 빨간 딱지가 붙고 나서부터 부인은 교회에 열심히 갔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죄를 내가 갚겠다고. 이 술은 토해내야 한다. 나는 아직 속죄를 끝내지 못했다. 무엇도 누릴 수 없다. 아니 누려서는 안된다.  "먹고 가. 난 계산하고 나갈게."

"네?" 라는 물음을 뒤로하고 차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세상이 돌기 시작했고, 그날 나를 바라보던 가족의 눈빛처럼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심장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걷기 시작했다. 분명히 한 잔만 마셨다. 그렇게 여겼다. 내가 술이 이렇게 약해졌나,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버스의 뒷좌석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억지로 몸을 누이자 현란한 소리와 시끄러운 광경이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어두웠지만 윤곽은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피부 빛이 검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차 안은 더러웠으나 어떤 아릿하고 아련한 냄새가 났다. 나의 6년간은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완벽한 대칭을 이뤄왔다. 언제 어디에서 연락이 올는지는 몰랐지만 매일은 해야할 일로 가득 차 있었고, 통장에 '송금'이라는 글씨가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이뤄야 할 바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두가지 뿐이었다. '미안해'라고 세번 말하기와 라면이 가장 싼 가게. 몸의 피곤함은 내 죄를 나 스스로 사하기 위해서라며 자위했고, 정신의 피곤함은 느낄 새가 없었다. 벌레와도 같은 삶, 하지만 거세당한 기계, 송금이라는 달성의 황홀경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삶은 목표로 가득 차 있었다. 잘 살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리고 잘 살아갈 것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여겼다. 2004년 10월 25일까지는 그러했다. 삶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완벽하게 그려진 동그라미는 단 한번도 찌그러지지 않았고, 그 자체로 완벽했다. 원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없이, 늘 항상성을 유지했던 삶은 그날 더 이상 송금이라는 말이 찍힐 필요가 없던 날부터 요동쳤고, 이제는 찌그러지고 터진 기괴한 도형같았다. 그리고 이젠 그 중심중 하나였던 이스타나에 그리고 나의 중심에 모르는 여자가 올라타 있다.

흰 목 위로 얼굴의 표정은 당당했다. 아름다운 젖가슴은 지나치지 않게 부풀어 있었다. 배꼽 아래로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술잔이 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여자와 살을 맞대고 있었고 좁은 간이침대가 요동쳤다.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길 원하는 여자는 아닐까?'라고 의심할 틈 없이 여자는 내 동그라미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격정의 순간 힘을 잃는 남자처럼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대칭의 원은 한없이 쪼그라들었고, 마찬가지로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기만을 원했던' 나는 욕망의 저잣거리를 지나쳐 속죄의 길로 향하는 십자군의 태도를 버렸다. 금기는 깨졌고, 사진 속의 가족이 궁금했다. 나를 혹사시킬 때만이 존재했던 동그라미는 부서져버렸다. 나의 속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번개소리가 울렸고, 옆으로 큰 물웅덩이가 생겼는지 정면의 차창에 파도같은 물보라가 일었다. 크게 흔들린 차체에 깜짝놀라 나는 잠에서 깼다. 흔들렸고, 다시 흔들렸다. 언제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주병이 바닥을 뒹굴었고, 1998년 4월로 제조일자가 찍혀 있었다. 다시금 전화 벨이 울렸다. "강거갑씨 일 안와요? 8시 반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이제 일 안가요.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참고서적 :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저, 이윤기 역, 열린책들.

 

가감없는 지적질을 원합니다. 글쓰기 형식이든 내용이든 문체든 수사든 맞춤법이든 뭐든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