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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9월자 글쓰기 - 젠더.

친하고 싶어서 보여주려 하는데, 너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끄고서는 손을 들어 오징어잡이 배를 가리켰다. "난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너를 사랑해." 그이는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나를 사랑한더랬다. 그이는 동해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오징어잡이 배가 저만치 보이기도 했고, 그이는 어려서 오징어잡이 배에 올랐다고 했다. “다른 단어는 필요치 않아”(라고 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둠 속에서 그이의 몸을 더듬어 손을 찾았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물었다. "차라리 모래알이라고 하지?"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그이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힘을 주어 대답했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멀리 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한 곳에 모이고 떨어졌다. 불빛 너머의 수평선은 이미 지워졌다. 그래서일까 하늘은 바다였고 바다는 하늘이었다. "바다도 하늘도 없어진 것 같아." 라고 나는 불쑥 말했다. "옛날에는 하늘도 바다도 다 하나였다고 아버지가 그랬어. 그런데 어떤 신이 나타나서 갈라버렸대. 하늘이 갈라지고 바다가 무너지던 그날부터 이렇게 됐대." "그럼 그전에는 오징어가 하늘에서 날아 다녔겠구만?" 나는 킥킥대며 다시금 질문했다. "그때는 너도 나도 오징어 였을 런지도 모르지, 저기 하늘의 빛방울을 향해 날아가는 그런 오징어."

 

  그이는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별도 그리고 오징어잡이배도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와 밤기운에 담겨 있는 하늘과 바다에 잠겨 나는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하늘에는 오징어가 꿈을 꾸며 날아다니고 저기 멀리에는 태양이 있었다. 그런데 그 태양은 하늘같은 바다에 잠겨있었고, 해저에 있었지만 꺼지지 않고 빛을 발산했다. 태양이 빛나는데도 오징어들은 심해와 같은 하늘 속을 유영했다. 물리학의 법칙 따위는 모두 무시한 세계에서는 빛도 빛이 가득한 삽화와 같이 단절된 채로 남겨져있었고, 절대적인 질량을 가진 하나의 대상으로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는 하늘 어딘가에서도 자연규칙을 지키려는 듯이 다리를 쭉 피며 흐느적거려 움직였다. 멍하니 상상을 하느라 그이가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오징어고 뭐고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던 것일지는 모르겠다. 하늘도 바다도 불빛도 모두 지워졌다. 멍하니 입술을 포개고, 혀를 받았다. 사냥감을 포착해 준비중인 오징어처럼, 그리고 사냥감을 잡아 놓치지 않으려는 오징어 마냥 혀를 감싸 안았다. 혀는 꼬였고, 다리도 따라서 비비꼬였다. 여태 오징어이야기를 해서 그랬나, 나는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밤이 새도록 빛을 찾아 상승하는 오징어의 모습으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추웠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바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본적이 없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가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뭐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새 6년 전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지금도 이곳 동해다.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함께했던 그 사람은 아마도 바다와 하늘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날도 달이 없는 밤이었다. 싸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무심코 바다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 한 켠에 빛이 뭉쳐있었다. 그 날 우리는 엠티에 와 있었다.

 

  3월의 어느 날이었고, 다른 학교의 친구는 누가 엠티를 동해까지 가냐고 이야기했었다. 대학생활의 첫 엠티여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3월 2일부터 시작되어 온 술자리가 즐겁지 않았다. 선배는 1년을 더 살았다는 까닭에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를 설파했다. "선배, 대학교 인간관계 피상적이라는데 어때요?" "피상적이기는요, 오히려 자유롭게 만나니까 서로 맞는 사람끼리 더 친하게 지내죠." 웃는 선배의 뒤로 신입생은 이야기를 이었다. "정말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오기 전에 대학교 인간관계는 수박 겉 핥기 식이라고 하던데.." "대학생활 잘 못하면 그러기도 해요. 술 먹고 같이 노는 거 재밌잖아? 그래서 이렇게 술 먹고 그러면 놀릴 거리도 생기고, 진짜 이야기는 다 가고 한 테이블만 남았을 때부터 라니깐, 얼마나 재밌는대. 그럼 한잔 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술을 먹고 놀았던 나는 그 해 여름에 열린 월드컵 때 처음으로 전교에서 100등안에 들었다. 특별히 공부를 더하지는 않았다. 월드컵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웠던지 모두가 산화하였고 나는 400 명중100등이라는 쾌거를 올렸었다. 이전의 성적표에는 '우우우우우미양우미미양'만이 찍혀있었다. 처음으로 수가 찍혀있던 성적표에 여드름범벅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될 수 있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을 끊었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던 친구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한켠에서 술병을 깨뜨리며 "씨발"이라고 함께 외쳤던 친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때 우리가 외쳤던 "씨발"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술에 취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점점 몸이 술에 익숙해지던 때 이제 그 시간에만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던 게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술을 마셨고, 나는 공부를 했다. 무엇을 공부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누가 하라지도 않은 재수를 했고, 대학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술집에 있는 선배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이야기는 다 가고 한 테이블만 남았을 때부터 라니깐......."

 

  나는 6년 전 동해로 떠나는 엠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짐은 없었고, 바람이 상쾌했다. 한 재밌는 선배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야 동해도 날씨 좋아, 이거 바람 거서 오는 거." 유쾌했다. '다 공부 열심히 해서 들어왔잖아, 그럴리가 없어.' 공부와 인격이 정비례하는 그래프는 사실 경제학 수업이 끝나면 지워지는 칠판 위의 수요 공급 그래프보다도 더 현실에 들어맞지 않았지만, 그렇게 여겼고, 모두와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찌 보면 다행스럽게도 기차 안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빈궁한 대학생 신분에 맞게 입석을 끊었고, 좌석 사이에 꾸겨져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다. 셋, 넷이 모여 있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도착한 동해는 역시나 날씨가 좋았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80년대 운동권 중 PD계열이 득세했던 과 분위기는 여전히 80년대의 낭만에 취해있었다. 사양도 권유도 자유롭게 무엇이나 개인의 자유다. 반성폭력자치규약도 있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선배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였던지, '너 술 안 먹어?' '야 FM!' '이 새끼 장난하나' 는 들리지 않았다. 몸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인 합의였던지, 선배들간의 합의에서 도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없었다. 아니면 모두가 순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온했던 술자리는 10시가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고 있던 걸까. 네 다섯 명이 둥글게 앉았던 테이블에서는 누군가는 목소리로, 누군가는 몸으로, 누군가는 친구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게임을 하는 테이블에서는 게임을 못하는 친구가 술에 취했고, 방으로 실려 들어갔다. 모두가 자신의 장점으로 누구인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어필하기에 바빴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도, 전적으로 드러나는 외모에도 관심을 읽고서 온전히 관계에 대한 열망과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득세했다. 말이 없었던 나의 존재는 침잠해갔다. 그 펜션 안에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괴물들만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래 이래서 그런갑다.' 혼잣말을 했다. 자기를 내어 보이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교를 힘겹게 들어 온 모두가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하나였다. '오래갈 친구, 피상적이지 않은 인간관계, 그러기 위한 생존투쟁' 그 안의 괴물들은 그나마 한 달 동안 알아왔던 면면으로 서로를 놀려먹었고, 그들 안의 거인들은 어느새 몸을 찢고 나와 나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20세기 초, 중반의 진화론자가 와서 관찰했다면 논문을 백 편을 쓰지 않았을, 분명히 잘난 애들은 살아남겠지. 거기다가 유전자 좋은 애들이 살아남는다고 하려나. 어쨌든 뻥 치는 애들이 그럴까? 잘 갈구는 애들. 역시 똑같아,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결국에 독한 애들, 더 구미에 맞는 애들이 살아남는 거겠지.' 라고 비웃던 중 얼굴이 붉어진 한 친구가 내 곁으로 왔다. "뭐가 다를 게, 뭐가 없어?"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뭐 다 똑같다고..." "뭐가 똑같냐고" "아니 그냥 고등학교 때 술 먹던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술 마시는 거 끝나면 뭐하겠어, 결국 과에서 선배들 눈에 드는 애들이나, 끼리끼리 비슷한 애들끼리 놀겠지. 그리고 수 틀리면 제 갈길 가는 것이고." "너도 느꼈어? 그니깐 지금 좋을 땐데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뭐가?." "그렇지..너 나 동해 사람인 것 아냐? 가자 일로 쭉 가면 바단데 디게 좋은 거 있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 날 이후로 TV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에서 오징어잡이배가 나오면 늘 유심히 봤다. 그리고 그이에게 물었었다. '오징어잡이는 봄에 안 한다던데?' '응? 에이 너가 몰라서 그래' 그날 이후로 손을 잡고 다니던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오징어는 어떻게 섹스를 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이의 대답에서 나는 신뢰를 잃었다. '그런걸 묻냐, 진짜 이상한 애야.' 나는 다리가 비비꼬이던 때 이후, 그 시뻘건 것이 우리를 연결했던 그날부터 오징어는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궁금했다. '동해에서 나서 공부만 했던 걔는 우등생이었겠지, 그냥 당당하고 싶어 했던 것 뿐이야, 드러내고 싶어 했고 내가 맘에 들었겠지...'

 

  9월의 바람은 차지만은 않았다. 함께 온 친구들은 손으로 양팔을 비비며 나왔다. "저기 멀리 저 불빛 오징어 배야." "뻥 치시네, 그 예전부터 오징어 타령" "니들 아냐? 요즘에는 지구 온난화래잖어? 근데 오징어 수획구역은 점점 남하하는 거야, 이게 지구가 뜨거워져서 남극의 빙하가 녹기 때문에 한류가 동해로 더 많이 유입되는 거래. 정말 클나지 않았어? 이러다가 영화 찍는다니깐, 그 뭐냐 있었잖아 빙하시대 오는 거." 듣던 다른 친구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야, 우리 시대에는 안 오니깐 걱정 마, 그건 그렇고 오징어 어떻게 생식하는 줄은 아냐? 얘네 진짜 신기해, 오징어 다리 많잖아 그 다리가 빨갛게 일어서거든, 그러면 그걸 암컷 오징어한테 찌르는 거거든. 그런데 암컷 한 마리한테 들러붙는 수컷이 한둘이 아닐 것 아냐, 그럼 정자를 모아뒀다가 수정시켜서 알로 낳고 죽는거지. 진짜 불쌍하지 않냐." 또 다른 친구가 놀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럼 그거 전설 속에 나오는 크라켄 이야기 있잖아, 흰수염고래랑 큰 전함 집어 삼킨다는 왕오징어, 그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오징어, 오징어하니깐 시가 떠오르네.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보며 침묵하자 그 친구는 말을 이었다. "아 미안, 그냥 배고프다고." 나는 그 말에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징어를 알까? 오징어가 뭔지 말이야, 우리가 정확히 뭔가를 알 수 있을까?" 모두는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왠 진지한 소리야, 아니지." 6년 전의 나는 나를 이끄는 손길에 따라 도망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모두가 늘 같을지도 모르지, 나를 포함해서, 물론 친하다는 말이 어떤 허풍도, 이야기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친하다면 남극에서 한류가 온다는 쉽게 하는 말, 수획구역은 또 뭐야 어장이겠지. 오징어의 다리 중 긴 것 두 개가 아닌 다리 모두가 생식의 기능을 가졌다는 이야기나, 오징어가 전함을 보고 집어삼킨다는 선원들의 허풍담, 그리고 결국에는 '나'가 배가 고프다는 소리. 그래 각자는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네, 어느 순간이고 할 이야기가 있는 거고, 아는 만큼이든 즉시 떠오르는 것이든 말야. 적당히 허풍도 치고, 헛소리도 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이야기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다른 생각이 가지를 치고 드러났다. '겨우 오징어 인데 이야기 거참,'

 

  생각의 가지는 동해 행 버스를 타기 전 오전의 젠더스터디에서의 질문에 가서 닿았다. "당신에게 젠더란 무엇입니까? 삶의 경험과 결부시켜서 이야기해볼까요" 그리고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대답을 해보려 속으로 곱씹었다. "모두는 외롭고 고독해서 조금 더 자기 속의 괴물을 혹은 거인을 드러내고 싶어해요. 그래야 친해진다고 여길지도 몰라요. 이제 우리는 말을 이어가게 되는데, 괴물과 거인은 육체와는 별개로 자신의 '나'들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이지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여기는 외양을 껍질이라 여기는 위대한 거인과 괴물, 어떻게 보면 젠더를 통해서 진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기나 봐요. 소실점 같은 느낌이에요. 젠더라는 소실점을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젠더를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를 통해 남을 보려 하지만, 결국 그 소실점 너머에 스쳐 보이는 것은 늘상 다른 그런 것 말이에요. 말을 하고 나니 부끄럽네요. 불가능하다는 자괴감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