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론자 수정1

걸 개 2012.05.14 19:22

얼마전에 읽었던 『헌법의 풍경』에서 저자인 김두식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니던 때에 한 교수의 수업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시험보는 기계를 양산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 토론수업을 하고, 학생에게 윤리적, 존재론적 혹은 인식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업 시간중에 지목된 학생은 주장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미국의 교수는 학생의 주장에 반박을 할 뿐이다. 마치 교수의 주장은 없고, 지목당한 학생의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해나가는 뿐인 듯 하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헤겔이 집대성한 변증법 즉 정과 반을 통해 합이라는 진보를 향한 도달과는 다르다. 변증술은 합을 향하여 나간다기보다는 상대의 무지를 일깨워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정正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절대론적 윤리설이라고도 하는데,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윤리 규준을 인정한다.

 

절대론적 윤리설은 무너진지 오래지는 것은 물론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미국의 로스쿨 수업 풍경을 보면, 미국의 교수는 학생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운다. 학생은 자신의 주장을 만들어가며 한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절대적인 옳음이 있다기 보다는 논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며, 그리고 하나의 사건에 개입하는 수 많은 관점과 관점을 유발하는 가치관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고정된 하나의 관점으로 사건을 보기보다는 학생보다 더 많은 상식을 가지고서 논박하는 교수의 태도 덕택이다.

 

궤변이란 논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말을 포장하는 것이다. 논리학에는 타당성과 건전성이 있는데, 타당성은 논리의 형식을 다루며 건전성은 논리의 내용적 적합성을 따진다. 궤변은 충분히 논리적으로 타당할 수 있고, 건전하지 못한 이유는 내용의 측면에서 상식, 직관, 전문가, 경험 에 의하여 논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성적인 금기가 있고, 직관적으로 1+1=2 라는 정답이 있으며, 전문가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자전하며 공전하고있는 것 같다. 더불어 경험적으로 아마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 것이다. 논증하는 4가지 요소는 분명 현재에는 옳다고 인정되는 바이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 시대에는 남색男色이 상식이었고, 어린시절에는 1+1= 창문 이 정답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전회가 있기 전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전문가의 주장이었으며 나침반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해가 뜨는 곳이 동쪽이지, 동쪽에서 해가 뜨지는 않았을 것이다.

 

논리적 건전성을 담지하는 4가지 요소는 경험주의의 귀납추리의 결과이다. 어느 논리적인 철학자도 절대적인 제1공리를 세우지 못했고, 따라서 존재의 독립성과 인식의 출발점을 똑바로 세우지 못했다. (사견으로는 스피노자는 그래서 대단하기는 하다. 다 만든 느낌이라서-_-) 절대적인 상식, 직관, 경험, 전문가 에 의한 논증은 불가능하다.

 

궤변이란 건전하지 못한 주장이며, 논증이다. 하지만 위의 로스쿨 풍경에서 보았듯이 교수의 말은 전문가의 권위에 의하여 증명이 가능한 논거를 달기 때문에 적합성이 높은(그럴듯 해 보이는) 주장일 뿐이다. 사실인즉 궤변론자는 교수이고, 교수는 학생을 논리적으로 탄탄한 타당성을 갖춘 애기궤변론자로 만들고 있다.

 

"악법도 법인가?" 한국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있으니 악법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일반적인 법치에 대한 착각은 법치를 법규로 보게 만들고 법규[각주:1]에 의한 사회를 정당화한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의문을 해소하며 대중에게 법규사회를 가르친다. 근대의 성과물인 홉스식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계약의 소산으로써 시민사회에 다다르게 되었고 사회가 만든 법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냥 법이니까 지키는 것이 상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문단은 이상한데 그럼 악법은 나쁜 것인데 선을 위해서 악법을 지켜야 한다와, 부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기에 법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숨겨진 전제가 두개 달린다. 국가가 선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건 좋게 봐줘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 그런가? 그럼 이는 건전하지 못한 주장, 궤변인가??-_- (내가 적었지만 그냥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말인 것 같기고 하고, )

 

소피스트들을 보고서는 궤변론자라고 하며,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전해지는 "악법도 법이다."[각주:2]라는 또 다른 궤변을 강권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논리적인 틀을 갖추는 것이다. 곧 논리적으로 타당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소피스트적인 사고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적고 있다.

 

  1. 법치와 법규는 엄연히 다른 의미인데, 스피노자가 한 말을 빌려 설명해 본다. "모든 것을 법률로 통제하려는 자는 악을 질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신장시킬 것이다." 법규란 법률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이고, 법치란 법이 스스로 갖는 권위를 시민이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실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법규사회를 이끈 박정희식 윤리교육의 병폐인가? [본문으로]
Posted by namit
어느새 3월이 절반이 갔다. 절반인 15일 동안 사건들이 응축적으로 발생했다. 응축적이면 대처를 하지 못한다. 대처는 마음가짐의 문제다. 마음가짐은 자유의지의 합리적인 발현이다. 합리적이지 못하면 화가 난다. 화는 내 안의 불이다. 불은 꺼야 한다. 불을 끄기 위하여 나를 돌아본다. 나를 돌아보면 가끔 가슴이 저민다. 저미는 가슴이 존재하는 감정인지는 불명확하다. 감정이 나로 말미암아 분출했을 수 있다. "수 있다"라는 말은 잠재성이다. 잠재성이 진실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명확하지 않다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아니라면 알리바이는 명료하지 않다. 알리바이가 명료하지 않다면 가능성은 있다. 가능성은 근거를 만들기도 한다. 만들어진 근거는 흔히 표적수사이다. 표적수사는 명료하며 거짓이다. 명료한 거짓은 영원히라고 말하는 확신이다. 확신은 사실관계에서 비롯되어야 옳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확인을 하면 진실은 사라진다. 진실은 거짓이 있어야 존재한다. 거짓은 진실의 반대급부이다. 

대표적인 이분법의 오류. 말바꾸기, 궤변. 말이어가기, 혼란스럽게 하기. 

쓴 이유는 없다. 역시 말이라는 것은 거지말부렁이다. 토론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질문도 가끔 나게 다가온다. 허무주의도 안된다. 그렇지만 어떤 말도, 어떤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도 재미가 있다.

음. 이런 글쓰기,ㅋㅋ뭔가 자극적이고 웃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좀 아무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듯 하기도 하고, 쨋든. 난 진지하려고 하는 중이니깐, 계속 이어가서.

우선 3월은 소설을 끊었다. 그리고 한학기가 목표이다. 끊었다라는 말을 쓸 수 있을 만큼 내가 탐독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시기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Posted by na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