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3 신념부재.

걸 개 2012.11.13 18:26

글쓰기를 많이 하고 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적어내려가다 보면 무언가 걸리적 거리는 껀덕지가 있다. '직관'이라는 경험을 통한 표상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달아 본다. 한 예술가는 감각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중에 특정 경험을 하면 표상이 맺힌다고 했다.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난다, 미학자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침에 읽은 책 혹은 드라마 영화의 이미지가 어떤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할 때 떠올라 결합하여 모호한 인상을 갖게 된다면, 이는 일종의 표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불명확한 껀덕지에 걸리적 거리는 느낌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적는 족족 제출을 하는데 곧 평가로 이어진다. 흔히 이러한 평이 나온다. "글을 장악하지 못함, 저자의 미끄러짐, 불분명하고 논리적 건전성이 떨어지는 표현." 이러한 평을 받는 까닭은 분명히 내가 나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련의 표상의 범람에 있다. 사고는 단어로 범주화되고 위계화되어야 나를 빠져나올 수 있다. 표상은 단어를 통해 나를 빠져나와 상대에게 나아가 닿았을 때 의미를 갖는데, 표상 간의 논리성은 내적으로만 정합적이기 일쑤다. (내적 정합성조차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이것은 뺌.ㅋ) 그럼 변환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자료의 양을 세계의 사실과 동등한 수준에 맞추어 정합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늘 어렵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하는 표상은 나아가 닿지 않으며, 내 머리 안에서 다른 감각자료와 짬뽕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표상을 일으킨 시발점조차도 잊는다.

 

우선 개인적인 논리를 세계에의 논리에 맞추고, 적합한 단어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러려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나는 "책을 읽어서 글솜씨가 늘어난다고 내게 어떤 도움이 생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 우선은 그냥 하는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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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나방.

걸 개 2012.09.11 13:16

8시 53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담배를 한개피 꺼냈고, 라이터를 들었다. 그리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반절쯤 피웠을까, 목덜미 뒤로 괴이한 이질감이 엄습했다. 내 눈구멍이 앞으로 쏠려 있어서인지 깜짝 놀랐고, 마치 곤충의 신경반응처럼 허리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움찔,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나방이다. 나방이 창에 여러번 몸을 부딪혔다. 창을 넘어들려나보다. 그런데 한마리다.

 

종종 밤거리에서 봤다. 골목의 전등불 아래로 나는 나방, 끊이지 않고 배회하기를 여러번, 그렇게 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나방들이 자리잡고 있는 가로등을 지나쳐 있다. 득실득실하다. 꿈틀꿈틀은 아니다. 애벌레들처럼 포개져 있지도 않다.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정전기 전깃불이 튀어 그 작은 몸이 불타버릴게 두려워서인지 접촉하지는 않는다. 함께이지만 홀로 전등불 아래를 헤맨다. 거기에 나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늘 전등불 아래를 채우고 있던 나방들 중 한마리가 지금 홀로 창을 넘어가려고 애쓴다.

 

그렇게 많았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 단 한번도 부딪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나방들, 함께 날지만 서로의 간격을 지켜주며 홀로하던 나방이 지금 열리지 않는 유리에 몸을 들이민다. 그리고 홀로다. 어디를 가려는지, 왜 햇살이 창백한 이 아침에는 홀로 있는지, 다른 나방들은 다 태양을 향해 날기 시작했나. 왜 지금은 홀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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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25, 1998.05.25, 1998.06.25....... 2002.05.25, 2002.06.25, 2002.07.25, 2002.08.25....... 2004.10.25. IMF로부터 79개월, 매달 200만원 그리고 저금 통장에 찍힌 79개의 '송금'이란 글자를 읽고 또 읽었다. 두번, 세번, 네번째로 "1998.04.25 2000000 송금"가 새겨진 통장의 첫 페이지를 펴려 손가락을 움직이던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6년 전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말의 의미가 와 닿았던 그 날에도 손에는 12인승 버스의 열쇠와 이 통장뿐이었다. 비를 뿌릴 것 같던 하늘은 한 두방울 물방울을 흘렸고, 빗물은 통장에 자국을 남겼다. 검정색 글자는 점차 감청색 흔적으로 변해갔다. '6'이 '8'로 '5'가 '6'으로 변하는 과정을 물끄러미 봤다. 한껏 감긴 태엽이 풀리 듯 팔과 다리의 근육이 요동쳤다. 양손으로 통장을 접었고, 이미 다리는 은행 앞에 세워진 12인승 이스타나를 향해 교차하고 있었다.

은회색 97 연식 이스타나의 뒷 창에는 녹색테이프가 붙어 언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한 창을 붙잡고 있었다. 일종의 반창고가 덕지 덕지 붙어 상처를 가리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았다. 이스타나의 앞 범퍼와 뒷좌석으로 통하는 문에는 가리지도 못 할 커다란 긁힌 흔적들이 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뜀박질 속에 빗물이 튀고, 이음새가 헐거워진 갈색 로퍼는 들어오는 빗물을 막지 못했다. 로퍼에 묻은 회갈색 페인트와 상흔을 가리고 있는 녹색테이프는 왜인지 모르게 유사해보였고, 그 주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뒷자석에는 있어야 할 좌석 대신 간이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침대위에 펼쳐진 두꺼운 이불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털들이 엉겨붙어 있었다. 6년 전에 개조된 차 내부에는 냄비 속에 들어가지 못한 라면 부스러기와 흘린 국물자국이 절묘했고, 언제라도 찍찍찍하는 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문을 열고 간이 침대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고, 습관적으로 또 한번 통장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내려 했지만 소매가 해져 빗방울을 닦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장 위의 흐릿해진 감청색 무늬들을 보자 "안돼, 안돼, 안돼."라는 작은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나왔다. 손을 뻗어 검정색 펜을 찾았고, 간이 침대 아래서 찾은 모나미 볼펜으로 선명하고 뚜렷하게 숫자를 새겨 넣었다. 25는 26이면 안됐고, 25여야만 했다. 0은 6개여야만 했고, '송금'이라는 글씨는 '솜긍'이어서는 안됐다. 6월 역시 8월이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힘줘 눌러 쓴 숫자는 모호하지만 뚜렷한 검정색을 드러내 갔다. 작업이 끝난 통장은 덕지덕지 땜질을 한 집 마냥 너덜너덜해졌다.

문득 굵은 빗소리가 차 안을 울리자, 나는 창 밖을 봤다. 차창에는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방울 한 구석이 터져 다른 방울과 합쳐지고, 부서짐을 계속했다. 거센 빗소리가 익숙해질 즈음 계기판 옆에 붙어 있느 사진을 쓰다듬었고, 사진 속의 두아이와 한명의 여자는 그를 보고 활짝 웃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피부는 굳어버려 딱딱한 돌처럼 된지 오래였으며, 손가락 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살이라기 보다는 껍질이 옳았다.

나는 6년간 가족을 이렇게 불러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라고 하루 세번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던가. 내가 전할 수 있던 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세번씩 하루 세번 이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애들의 이름과 여보의 이름은 깊은 동굴 속에 남겨져 있는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잊혀져 있었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미소는 분명 6년동안 마찬가지였다. 내가 간이침대 위에서 새우잠을 청할 때도, 용역업체에서 연락을 받고 아무도 없는 밤의 도로를 달릴 때도, 추운 겨울 날 관리직원이 없는 지하주차장을 찾아 들어갈 때도, 더운 여름 날 주차비 정산원이 출근하기 전에 한강변의 주차장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분명 그렇다고 믿어왔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이었다. 이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6년을 기다렸고, 고대해 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마찬가지로 고대해 왔던 전화다. 019-124-6370이 짙은 녹색으로 찍혀 연한 녹색의 액정 속에서 깜빡였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앞으로 전화를 받지 않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불과 두시간 전이었는데 너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예"라고 말했다. "강거갑씨, 오늘 8시부터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편의점 일 있어요." 전화를 끊고, 사진을 봤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에요? 가족들은 다 어디있는데요?" 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입술을 굳히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 때 떠났어, 아니 떠나보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어. 빚쟁이들은 쫓아오지 갚을 돈은 없지. 다 가압류당하고는 이혼서류 찍을 때 한 번 봤어. 그래야 편하데나 뭐래나." "술이나 한잔 해요." "술 먹은 적 없어. 벌써 언제 술먹었는지 기억이 안나." "바다에서는 조개구이에 소주가 최고에요." 가슴을 들이밀며 말하는 이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거부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야외에 조개구이 집이 있었다. 작은 봉고 버스는 힘겨운 엔진소리를 냈다. 나는 향긋한 구이 냄새를 맡았다. "배고파요, 얼른 먹어요." 차에서 내린 여자는 이미 저만치 가서 손짓을 했다. 조개구이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왜 만나러 안가요?" "뭘." "가족이요, 아까 보니 아직도 사진 붙여두고 있던데." "벌써 6년이나 연락을 안했어. 그렇다고 헤어질 때 다시 나타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애들도 있고, 보고싶지 않아요?" "웬걸. 6년동안 안 만난 친구한테 연락해 봤어? 거기다가 그냥 안보게 된 것도 아니고, 안좋게 끝난 관계 친구? 그만해." 한번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이 멍청한 년, 너같으면 찾아가겠냐. 아니 찾아갈 수 있겠냐. 매일같이 사진보면서 라면만 먹었는데, 그렇게 독하게 갚았는데, 그게 다 돌아가보고 싶어서였는 것도 상상 못하냐. 속죄야 속죄. "소주 하나요." 여자가 말했고, 곧 소주 한병이 상에 올라왔다.

"오랜만에 술 먹는다면서요. 우선 한잔 짠!해요." 술잔을 받아들고 투명한 액체를 빤히 바라봤다. 왜곡되고 뒤틀려 보이는 술잔 뒤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돌아가도 될까. 나를 기다릴까. 딴 남자 만났으면 어쩌지. 애들이 내 얼굴은 기억할까. 나는 술을 마셔도 되는 걸까.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서 빚 다 갚고는 뭐했어요?" "뭐하긴 일했지." "끝이에요?" "끝이지." "뭐에요, 술도 6년만이다, 담배도 안핀다, 무슨 성인군자 났네 났어. 뭔 재미로 살아요, 무슨 중이야? 신부야? 얼른 술이나 한잔 해봐요. 여기까지 와서 안마시면 그게 뭐에요." "이걸 마시면 안 웃을 것 같아." "뭐래, 누가 웃어줬다고. 주사 심해요? 술은 안약하게 생겼는데?" "너 말고 가족이." 라고 말하며 억지로 술을 입에다 털었다. 싸한 냄새, 눈물이 날 듯 했고, 코 끝이 찡했다. 구토감에 어떤 역겨움이 뱃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일종의 수치심과 모욕감이 엄습했다. 7년 전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던 그날 가족들은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가족과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다람쥐같은 애들과 부인의 눈이 감겼을 때 떠나야만 했다.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러 오신 예수님은 정말 성인군자다. 나는 내 죄를 대신하려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 양반은 참 위대했나보다. 빨간 딱지가 붙고 나서부터 부인은 교회에 열심히 갔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죄를 내가 갚겠다고. 이 술은 토해내야 한다. 나는 아직 속죄를 끝내지 못했다. 무엇도 누릴 수 없다. 아니 누려서는 안된다.  "먹고 가. 난 계산하고 나갈게."

"네?" 라는 물음을 뒤로하고 차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세상이 돌기 시작했고, 그날 나를 바라보던 가족의 눈빛처럼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심장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걷기 시작했다. 분명히 한 잔만 마셨다. 그렇게 여겼다. 내가 술이 이렇게 약해졌나,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버스의 뒷좌석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억지로 몸을 누이자 현란한 소리와 시끄러운 광경이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어두웠지만 윤곽은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피부 빛이 검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차 안은 더러웠으나 어떤 아릿하고 아련한 냄새가 났다. 나의 6년간은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완벽한 대칭을 이뤄왔다. 언제 어디에서 연락이 올는지는 몰랐지만 매일은 해야할 일로 가득 차 있었고, 통장에 '송금'이라는 글씨가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이뤄야 할 바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두가지 뿐이었다. '미안해'라고 세번 말하기와 라면이 가장 싼 가게. 몸의 피곤함은 내 죄를 나 스스로 사하기 위해서라며 자위했고, 정신의 피곤함은 느낄 새가 없었다. 벌레와도 같은 삶, 하지만 거세당한 기계, 송금이라는 달성의 황홀경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삶은 목표로 가득 차 있었다. 잘 살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리고 잘 살아갈 것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여겼다. 2004년 10월 25일까지는 그러했다. 삶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완벽하게 그려진 동그라미는 단 한번도 찌그러지지 않았고, 그 자체로 완벽했다. 원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없이, 늘 항상성을 유지했던 삶은 그날 더 이상 송금이라는 말이 찍힐 필요가 없던 날부터 요동쳤고, 이제는 찌그러지고 터진 기괴한 도형같았다. 그리고 이젠 그 중심중 하나였던 이스타나에 그리고 나의 중심에 모르는 여자가 올라타 있다.

흰 목 위로 얼굴의 표정은 당당했다. 아름다운 젖가슴은 지나치지 않게 부풀어 있었다. 배꼽 아래로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술잔이 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여자와 살을 맞대고 있었고 좁은 간이침대가 요동쳤다.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길 원하는 여자는 아닐까?'라고 의심할 틈 없이 여자는 내 동그라미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격정의 순간 힘을 잃는 남자처럼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대칭의 원은 한없이 쪼그라들었고, 마찬가지로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기만을 원했던' 나는 욕망의 저잣거리를 지나쳐 속죄의 길로 향하는 십자군의 태도를 버렸다. 금기는 깨졌고, 사진 속의 가족이 궁금했다. 나를 혹사시킬 때만이 존재했던 동그라미는 부서져버렸다. 나의 속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번개소리가 울렸고, 옆으로 큰 물웅덩이가 생겼는지 정면의 차창에 파도같은 물보라가 일었다. 크게 흔들린 차체에 깜짝놀라 나는 잠에서 깼다. 흔들렸고, 다시 흔들렸다. 언제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주병이 바닥을 뒹굴었고, 1998년 4월로 제조일자가 찍혀 있었다. 다시금 전화 벨이 울렸다. "강거갑씨 일 안와요? 8시 반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이제 일 안가요.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참고서적 :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저, 이윤기 역, 열린책들.

 

가감없는 지적질을 원합니다. 글쓰기 형식이든 내용이든 문체든 수사든 맞춤법이든 뭐든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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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결국 얼레리 꼴레리

 

문득 내 안의 괴물을 느꼈다. 나는 옆에 누운 그녀를 겁탈하고 겁탈하고 또 겁탈했다. 내 안의 괴물은 그녀 안의 괴물을 향하여 '우리'가 되자는 언어를 뱉어낸다. 우리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나, 매캐한 향과 함께 우리는 깨져나간다. 한판의 놀이는 이렇게 끝났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명하던 시절에 순결캔디를 받았다. '순결'이라는 이음절의 단어의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가꾸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선생님은 설명했다. 물론 아이들이 선생님의 재미없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영국 교주의 정액과 피가 섞인 캔디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이 캔디를 먹고 나이가 들어서 섹스를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고 했다. 내가 사탕을 먹는지 안 먹는지는 선생님이 주의를 기울여 확인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미 순결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나와 친구들을 쑥덕거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말을 이어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탕에서 시작한 잡담은 어느새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고, 우리의 사고는 터진 봇물마냥 사방을 적셔나갔다. 섹스는 영화에나 나올 금발미녀들이 몸에 기름을 바른 채 헐벗고는 근육질의 헐크 호간들과 함께 어색한 자세를 하고서 등장하는 playboy 잡지에나 나오는 단어였고, 정액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단어였다. 우리가 그거였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한 친구에게 멍청아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태초의 경험을 자극했던가? 라는 의문은 당시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을 뿐이다. 그 단어들은 우리에게 선생님에게 들킬 수 없는 우리만의 금기어였을 뿐이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러한 요상한 단어들이었다. 덧붙이자면 피는 수가 뒤틀려 주먹질 하고 싸울 때 승부를 결정지어주는 코에서 나오는 승부의 척도였다.

'순결'은 재미가 없는 단어였다. 의미도 없었고, 의미를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캔디의 맛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다.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것은 놀이였고, 놀이는 재미가 있어야 했다. 역시나 재미가 없는 선생님의 말보다는 주워들은 소문과 나름의 진지한 잡담이 재미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 누가 누군가와 둘이 있었다는 소문, 어른의 용어로는 연애의 초입이었을지 모를 누구랑 누구가 둘이 있었다는 얼레리 꼴레리.


발랄한 네온사인 아래로 사람들이 부대낀다. 골목길 사이로 침이 흥건한 담배가 바닥을 뒹굴고 터지는 리듬이 지하 어딘가로부터 몸을 울린다. 나는 조금이라도 리듬의 중심에 다가서고자 지하로 발을 옮겼다. 공간을 가득채운 사람들 사이로 나의 시선은 비집고 들어가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발은 느렸지만 눈동자는 빨랐고, 던져진 시선은 발이 가야할 곳을 인도한다. 구석에 자리한 바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이 있었고, 클럽에 어울리는 화장은 볼을 볼륨감있게, 눈가를 검은빛으로 잡아늘여 커다란 눈이 시선을 흩뿌리게 돕고 있었다. anna lesko의 get it의 리듬이 폭발한다. 시선은 흩뿌려지지만 날카롭게 몸의 맵시와 얼굴의 윤곽을 훑었고, 시선이 교차할 때마다 인연의 붉은 끈은 엮이고 꼬인다. 비로소 몸은 바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목소리는 음악에 묻혀 퍼지지 않았다. 음악이 만드는 분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에게 평등을 주고 있었다. 시선이 꽂히는 것은 가슴과 코와 입과 그와 그녀들이다. 당장에 부와 명예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옷을 입었는지, 성형을 했는지, 좋은 것을 많이 먹어 피부가 좋은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둘수도 없었다. 발광하는 조명이 옷과 피부에 반사되어 나올 때의 그 단색만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들어왔다. 환각제와 같은 단색의 빛깔들은 그 장소의 모두가 끌림을 발산케 했다. 입고 있는 옷과 몸매와 화장은 빛과 어우러져 끌림을 이끌고, 끌림은 가늘지만 헤어질때까지 끊기지 않을 인연의 끈을 구성해나갔다.

'골목에 있던 침이 흥건한 담배가 뭐였더라?' 나의 끌림이 닿은 곳에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VIRGINIA SLIM(버지니야 슬림)이다. 미국의 한 담배업체가 여성을 위한 담배라고 광고하는 이 담배의 이름은 VIRGIN '순결'한 그녀를 상기시켰다. '순결'한 그녀는 연기를 내뿜어 그녀의 손가락을 감싼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타들어가는 담배 끝을 향했고, 그에 닿아있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봤다. 인연의 끈일까? 나는 이 놀이의 목적이 떠올랐다. 붉은 끈이라나 어쩐다나? 인연의 끈은 이렇게 나를 '우리'에게로 모셔다 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와서 닿았고 인연의 끈은 점점 짧아졌다. 시선에서 출발해, 이제 서로는 몸을 밀착시키기 시작한다. 끊이지 않는 춤은 종착점을 찾아가고, 그때는 음악의 박자가 바뀔 때 즈음이고, VIRGIN이라는 담배가 생을 다할 때이다. 새로운 놀이를 시작할 때는 바로 그때다.


우리의 연애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끝난 적이 없고, 끝나지 않았지만 시작한 적이 없다. 많은 낭만주의 소설들은 역경을 딛고 도달하는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이라 여겼고, 그렇기에 난관을 겪어낸 주인공들에게 사랑이라는 행복을 소유할 자격을 부여했다면, 그렇게 끝난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책을 덮은 나의 상상력과 혼합되어 항구적인 로맨스를 남겨뒀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랑을 쫓지 않는 불나방들은 잉크통의 뚜껑을 따고 잉크를 흘려보낼 시간이라는 백지를 찾아 헤맸다. 등속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는 같은 백지를 가지고 있었고, 잉크통의 뚜껑을 따는 순간 우리의 백지는 육성과 몸짓에 같은 빛깔로 물들었다. 우리의 연애에 남겨진 것은 흘러나온 땀과 매캐한 살 냄새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감각이 지워지면서 우리는 다시금 나로 돌아간다.


1968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반항처럼 지미 헨드릭스가 등장해 조롱 섞어 기타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소리 지르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우리는 할당된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리는 함께 누군가를 향해 야유를 보내지 못하며, '우리'를 지어 당시 히피들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는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우리를 갈구하지만 '너'는 '나'로부터 '나'는 '너'로부터 멀어졌다. 우리의 잡담은 클럽의 입구 골목길에서 클럽에서 그리고 둘이 남겨진 공간에 있었다. 그 공간을 나서며 남겨진 것은 또다시 '나'와 또 다른 나인 '너'이다.

주체가 없는 경험이라는 푸코의 말처럼, 87년 6월혁명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나'라는 주체를 꺼내들고 주체가 없는 경험만을 덧씌워 '나'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욕망한다. 공유된 우리의 경험은 알 수 없는 단어인 '우리'를 갈구하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나의 쾌락, 나의 만족, 나의 자유는 우리를 찾아 헤매는 끝없는 걸음의 방식이다. 결코 다다를 수 없을 '우리'로의 열망은 잡담으로 끝난 순결캔디에 관한 진지한 고찰처럼 놀이로 귀결되어 버렸다. '우리'를 원하지만 '우리'를 알지 못해 다다를 수 없는 '나'는 여전히 정액과 순결과 섹스를 모르던 초등학교의 학생이다. 결국 '나'의 연애는 끝날 수 없는 '우리'의 유희 얼레리 꼴레리.

Posted by na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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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글쓰기.

걸 개 2012.05.02 11:49

한 글쓰기 수업에서 감당하지 못 할 비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다시금 글을 쓴다. 이렇게 표현했다. "비유에게 미안했다." "칼날이 나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 상처를 바라봤다." 그리고 비유와 은유로 잔혹한 현실을 비껴볼 수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든다. 정말 비유가 문제였을까, 사실 비유는 문제가 아니였을런지도 모른다. 비유와 은유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서로에 대하여 비스무리한 시각과 시야, 그리고 시력을 바탕으로 힘을 갖게 마련이다.

 

그는 서둘렀다. 문장은 문장을 휘갈겼던 그를 앞서 나아갔고, 쓰여진 문장의 겉모습은 글 안에서 균형잡힌 구조의 일부를 구성하기보다 그의 습관을 드러냈다. 각 문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은 문자의 사용이었을 뿐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정합성보다 적당한 수준의 모순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드러냈다. (모순과 정합성 사이에 우열을 가리는 가치판단은 배제한다.)

 

'내가 그의 입장에 서 있었다면, 나를 그에게로 투영하는,' 이러한 공감의 능력은 역시나 비유와 은유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는데에 가장 기초적으로 자리한다. 결국 비유와 은유는 글 안에 포섭되어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하며, 역량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아쉽게도 글은 단독적이며 개별적으로 완벽한 대상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자들이 " '우리'는 언어의 수인."이라고 말했듯이 글쓴이가 언어와 사회적 관념으로부터 독립적인 글을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단독적이고 개별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어디든 존재하고, 어디서든 독자와 글 사이에서 단 둘만의 결을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글쓴이가 의도하는 바가 설령 있었더라도 그렇게 읽힐 것인가는 기대 할 수 없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만큼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던가? 애를 놓은 기분이라고, 이제는 커가는 과정을 볼 뿐이라고. 결국 글쓴이는 스스로의 글을 지배할 수 없다.

 

그는 글을 세상에 내놓았고, 타자에게 읽혔다. 그의 육성이 자신의 글에 가감하는 해석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대를 벗어난 바람소리는 청자들의 귓가를 울렸고, 글과 독자가 갖는 둘만의 시간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비유와 은유를 이해하기에는 공감의 능력이 결여되는 시간, 스스로의 내적정화를 위해 애쓰는 짧은 글쓰기는 공감이 없는 해석 속에서 난도질 당했다.

 

최소한의 공감에 대한 노력이 있었더라면 글쓴이였던 그에게 가학적인 문장을 던져지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던진 순간 들려오고, 소화하는 순간 기억이 된다. 편린으로 남은 기억조차도 끊임없이 희구되며, 새로워진 기억이 생각과 행위를 더 나아가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적은 글은 타자에 대한 인터뷰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국에 이르러서는 거울 속 인터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인터뷰가 되었다.

 

나의 글쓰기는 남에게 어떻게 읽힐까, 그가 와서 읽어 볼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이렇게 한번 적어본다.

 

Posted by na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