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 그 날

책 장 2013.06.08 23:41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돕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通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 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적어두고 싶었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Posted by na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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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걸 개 2012.06.05 21:34

공부가 되지 않으면 도서관 산책에 나선다. 종이 냄새 풀풀 풍기는 책들 사이를 휘젓다보면 가끔 맞닥뜨리는 반가운 이름들이 있는데, 오늘은 왠지 장정일. 직접 다 읽어본 적도 없지만 워낙에 친숙한 이름이어서 책 세권을 몽땅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공부가 안되서 책을 읽는다."라 한편으로는 참 긍정적이지만 내가 들고 있는 나침반이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나는 내가 왜 책을 읽는지는 종종 까리하다. 와중에 장정일씨가 말하는 책을 읽어야 할 이유랄까.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적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장정일, 생각, p.167

 

얼마전에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맹신하는가?에 대한 응답이었는데,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호퍼는 공리부터 출발하는 엄밀한 논리구조를 세우지는 않지만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정합적인 가설을 세운다. 가난할수록 주체적인 자신감이 결여되어있다.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은 집단의 가치에 자기자신을 쏟아붓은 채 희생을 불사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집단의 가치에 투영한다. 집단의 가치 상승을 자신의 가치 상승과 동일하게 보면서 지속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관념적인 만족과 물질적인 급부가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관념과 물질 사이의 이분법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가 왔을 때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관념적으로는 여전히 예측가능한 세상을 원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지, 호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변화보다는 그대로 계속되어 예측불가능성을 최소화 하려는 열망은 변화를 두려움으로, 두려움을 기존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와 수구세력에 대한 긍정으로 향하게 한다. 결국 물질적인 빈곤을 관념적인 만족으로 극복한다. 물질적으로 가장 가난하지만 마음은 너희들과 마찬가지라는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의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이제 푸념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가 되어 내면화시킨 시를 읊는 화자의 다음 세대는 습관적으로 자기를 기만하며 자위한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가난한 자는 빈궁을 직시하지 않게 해줄 지금까지의 좋은 세상을 지켜줄 구관, 당신을 원합니다.

 

Posted by namit
외설이냐 예술이냐, 미친 교수,
윤기가 뚝뚝 떨어지는 빨간 메니큐어 바른 손톱,
손톱이 박힌 피부 틈으로 흐르는 더 빨간 피.
페티쉬나 가지고 있는 점잖지 못한 마광수씨의 시를 읽으면,
영감도, 할멈도, 부자도, 빈자도, 그 누구라도 손톱이 박힌 피부에서는 새빨간 피가 흐른다.
사랑이 고픈, 우리는 왜 서로를 구분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할까.
개처럼 섹스하고 싶다.라는 마광수의 시가 떠오르지만 (제목이 이게 맞을 거다.-_-)
올리는 시는 다른 시. 출처는 貴骨

마광수, 사랑받지 못하여.

님이여, 저는 아주 키가 작은 나무이고 싶어요.

우리들은 모두 다 외로움의 대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입니다.

나무들은 모두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어요.

그래서 대지와는 정반대방향인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지요.

키가 비슷하게 작은 나무들은, 서로의 가슴 위로 불어가는

크고 작은 바람들을 함께 알아요.

모두들 외로움에 깊게 지쳐 있기 때문에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키가 큰 나무들은 그 큰 키만큼

고적하고 외롭습니다.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서로가 마주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무가 적으니까요.

님이여, 그래서 저는 아주 작은 한낱 작목이고 싶어요.

키 큰 나무는 되고 싶지 않아요.

비록 아무 의미도 없이 쓰러져 땅 속에 묻혀버린다곤 해도,

저는 그저 외롭지 않게 한 세상을 살며

꿈꾸듯 서로 바라보며 
따사롭게 위안 받을 수 있는 

그런 많은 이웃들을 가지고 싶습니다.

Posted by namit
TAG 마광수,

모두가 말하지만 모두가 듣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이야기한다. 어리석음이 온 세상에 호통을 치는 형국이다. 간디도 예수도 석가도 누구의 말이라도 듣고 싶은 만큼 알고 싶은 만큼만 이해하기 마련이다. 유리병 속의 쪽지를 읽어야 하는데, 알고보니 유리병을 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유리병 속의 쪽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느냐 모르느냐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안보인다. 유리병 속의 쪽지는 정치적인 의도라고도 하고, 행동에 숨겨져 있는 의미라고도 하더라.

 

기형도,홀린사람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 때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 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 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 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 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Posted by na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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