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는 즐겁다?인지 기쁘다?인지 어떤 표현을 붙여야 할지는 불명확합니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태어남을 모두가 축복한다는 사실일 것이고. 그리고 누군가가 더이상 두발을 딛고 세상에 서 있지 못한다면 슬픈 이유는 분명 더 이상 누군가의 세상을 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만 사는게 아니고 똥도 살고 오줌도 살고 개고양이도 살고, 니도 살고 쟤도 살지 않겠습니까. 정말 너무 많은 거시기들이 살고 있어서 알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실상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런데도 시간과 열정을 불태우면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책따위를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나요.라고 생각을 하니,

"이건 그냥 친구가 없어서인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는 이런말 하기에 나는 너무 거만하다는 생각에 넘어가서, 다시 드는 생각이 책은 내가 읽는 동안에는 내마음대로이니깐, 결국 편협한 나의 욕심에서 난 책을 억지로 씹어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 세상을 보는 삼인칭객관적시점에서의 나랄까. 다른 말로 뭐랄까? 취식의 행위마냥, 맛있는 식사처럼 맛있는 책이 있는 한편, 맛없는 책이 텍스트에 대한 허기짐에 나도 모르게 씹어넘기는 경우가 있듯 책, 가끔은 그냥 읽습니다. 근래에는 많은 책을 읽지 않고 있지만.

지금 듣도 보도 못한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칸트뉨의 저작을 읽고 있는데 나는 왜 이책을 읽고 있느냐라는 나는 왜 공부를 하느냐와 같은 위기상황에 돌출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듭디다. 제길ㄹ. 흔히 프랑스에서 시작한 해체주의와 구조주의는 텍스트를 소화하는 대상이 그 텍스트의 주인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왔다는데, 이 책을 읽는 나는

"그냥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소화하는 느낌이 전혀 없습디다. 이해를 못하다보니
이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는 이 순간, 어쩌든 저쩌든 9시가 되었으니 다시 읽을 시간이라는...
이 책을 읽는 감상은 무엇보다도 완전 과거에 태어난 새로운 세상을 만나려고 그 만남을 기대하며 책을 펴들었는데, 이건 아기가 아닌거라.

몇천년전에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동남쪽? 북쪽? 어쨋든 어느쪽으론가 7걸음 인가?5걸음인가?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더라고. 그거 보고 어미가 놀라 자빠졌었겠지? 몇백년전에 죽은 칸트뉨하, 그냥 니가 짱이다. 니가 내놓은 애가 처음부터 무서웠을 것 같은데 지금은 어찌나 컸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na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