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집.

살 이/잠시살기 2009. 12. 30. 00:33
눈이 내린다. 달빛일까? 아니면 저 도심의 불빛일까? 음울한 빛깔의 밤하늘 사이로 눈이 하얗게 내려온다. 책상위에는 디스플러스 담배 한개피와 장군 주먹고기라 적혀있는 하늘빛보다 다소 탁한 색의 라이터, 그리고 검은색 핸드폰이 올려져있다. 전화기는 무음이며 꺼져있지는 않지만 꺼져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깜빡이는 모니터 옆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 스피커에서는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흘러나온다. 거 참 감정적으로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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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애 2010.02.09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94년 어느 늦은 밤!
    예전부터 너가 강추했었는데 생각난 김에 지금 틀어봐야겠다

09.11.16.00:00

살 이/잠시살기 2009. 11. 16. 00:04

선생님 저는 하나도 잘난 것이 없습니다. 아니요. 실은 잘나고 말고를 평가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잘남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찾아야 한다면 .굳이 찾아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한마디 더 헛소리를 할 줄 안다는 점. 그리고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색다른 생각을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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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다."라는 의미에는 아마 책의 내용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소개를 듣고, 책의 겉표지를 보고, 책의 삽화를 감상하며 그 책을 들고다니는 행위와 책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까지이다. 2번책을 다 못 읽어서 3번 책은 꼭 읽고 말겠다는 의지로 도전한 "아파트공화국" 저자는 지리학을 연구하는 프랑스 여성이다. 그리고 제목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아파트의 공화국이다.

어쨋든 서론 다 짜르고 한마디 하려다 보니 책 표지에 4-5포인트 정도의 크기로 적혀있다. "세상은 당신이 사는 곳을 동경합니다.", "이웃도 자부심입니다.", "집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인생의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모두다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져 있다. 그리고 아파트를 설명하는 어떤 문장도 어색하지가 않다.

우선 프랑스는 빠리에 고도제한을 두는 노력을 하며 높은 고층빌당을 거부한다. 그 결과 도시는 5층이하의 낮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건물들로 외관을 꾸미게 되었다. (물론 신시가지라 하여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상업지구가 과거 빠리 외곽지역에 건설되었다. 우리나라로보면 여의도만큼도 안되는 크기였던듯 싶다.) 작가는 이러한 나라에서 삶을 살아온 비한국적인 사람의 눈으로 우리의 아파트를 바라본다. 아니 어찌보면 콘크리트 건물의 숲을 바라본다.

문장들로 구성된 책의 표지를 구성한 인물이 쥴레조인지 아니면 출판사측인지 여부는 확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의 표지를 누가 선택을 하였건 간에 표지를 구성하는 문장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주체는 명확하다. 그 주체는 광고 혹은 선전이라는 여론을 선도하는 그리고 무의식중에 사회 일반에 영향을 끼치는 언론매체이다. 문장들은 사회 일반에서 광고방송을 통하여 개인들에게 전파된다. 그리고 접촉 된 광고들은 사회구성원들이 가치판단의 고려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마치 어렸을적 엄마, 혹은 아빠의 말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쉽지만 엄마 아빠의 한마디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은 명확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재미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단 한 발자욱만 뒤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일단 티비 혹은 신문에서 나오는 광고의 모습들을 떠올리면 연달아 생각의 가지가 치고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점이 존재함은 명확하다. 광고에서 최고 상종가를 치는 모델들의 등장과 마치 유럽의 Castle을 연상시키는 광고에서 더이상 아파트는 차디찬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다. 따듯한 "즐거운 나의 집"이 되는 동시에 명품을 입고 소비하며 값비싸 차를 모는 "나"의 가치와 오버랩된다. 사고의 근저에서 아파트는 이미 우리가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버린 상품의 의미를 갖게 된다.

집의 개념은 "즐거운 나의 집"이지만 그 즐거움은 과거의 합께하는 삶과는 큰 거리를 갖는다. 쥴레죠의 말에서와 같이 집은 더 이상 소통과 가족의 협동성 그리고 서로 도와가는 삶과는 거리감을 갖는다. 집은 들어올 때부터 무인 인식시스템에 근거하여 들어 올수 있는 존재와 들어 올수 없는 존재를 나누기 시작한다. Castle이라는 단어는 유럽의 고풍스럽고 서양적인 이미지로 한정되지 않는다. Castle은 말그대로 귀족과 평민을 나누는 그리고 거주민과 비거주민을 분별하여 수용하는 계급적인 차별의 공간이 된다.

책의 중간중간에 프랑스의 banlieu(한:도시 외곽의 영세민 거주지역 정도)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 공간의 거주민들은 서류상으로는 공화국의 국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거주민 자신들이 느끼는 정체성은 banlieu의 거주민일 뿐이다. 몇번의 소요사태 혹은 사회에 관한 반항에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공화국(프랑스)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100%수용하지 않는 프랑스 국가에서도 그들을 거주민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의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안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이 공간은 세습되며 더 좋은 거주지를 열망하는 한국의 중상류층이상의 계급에서는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는 유목민의 습성을 되살아난다. 유목민의 자유로움은 강조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더 좋은 장소만을 찾아가려는 무책임함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유목의 과정에서 남는 흔적은 직간접적인 더 낮은 계층의 피해뿐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문명이 자연을 휩쓸고 지나가듯이 어떠한 자연스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쫓아 온 중산층 혹은 영세민의 빚과 흔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랑스의 banlieu가 영세민을 수용하는 사회에서의 쉽게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수용하는 공간이라면 한국의 castle로 대표되는 중상류층 이상의 공간은 떨똥이 아닌 너무나 잘 적응한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사회 주류들을 위한 공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높은 건물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그들이 모셔져 있는 공간에는 오만가지의 편의 시설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시설의 종업원들은 과거의 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계급의 공간, 유럽에서는 중세에만 존재하였던 성의 귀족과 성밖의 일반민들의 관계가 한국에서는 현시대에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누가 만들었다고 하는가? 땅이 좁기 때문에 아파트를 권장한 정부? 더 좋은 집을 열망하는 중상류층? 돈을 벌기 위해 광고를 때리는 건설회사? 혹은 광고회사? 쥴레죠는 말한다. 집이 더이상 거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이 되면서 그리고 아파트가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는 한국민들의 서양적인 현대적인 이미지에 대한 투영이 일어 났을 때가 시작이라고.

-뭔가 대략 써두고 보니깐 이건 뭐 불평 불만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초딩 때쟁이가 떠오르는 것은 뭔가-_- 쥴레조가 castle이라는 체제가 완벽히 자리잡은 현시대에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파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해주는 책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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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흐드러지고 힘들어 하고 있는데 그나마 마음이 흐드러질때는 몸이 살짝쿵 버텨주시고 몸이 흐드러질때는 살짝쿵 마음이 버텨주시니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잘 돌아간다. 일주일에 이미 4일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 날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내가 정말 열정을 쏟아서 열심히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다. 아쉽다. 처음에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했었으나 현재 실상은 쉽지 않다. 책, 연극, 노래, 봉사. 아 많다. 토끼가 두마리면 두마리 다 놓친다고 했던 것이 하나라도 열심히 빠져보라는 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지라고 하면서 한번에 다 놓아버린 일도 많았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싫어한다고 흔하게 말하면서 그리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서는 안하는 것도 참 부끄럽다.

그러니까 이번만은 아니 이제부터는 손가락 끝마디, 발가락 끝마디 하나라도 걸쳐있다고 마음이 느끼는 한 아니 혹시 마음이 떠났더라도 내가 입으로 뱉었던 일들에 대하여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져 버리는 순간이 오지 않는 한 내 마음부터 몸 끝에 붙어있는 말초신경까지 즐거움을 잃도록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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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 -1

걸 개 2009. 9. 21. 17:26

조물주가 창조하는 것은 아름답다.
화가와 목수와 신은 셋다 모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화가의 모방은 이미 만들어진 침대의 이미지의 재생산이기에 Idea의 변모된 외양인 objet의 외양의 모방이다.(모방의 반복), 목수의 모방은 한차원정도는 더 높은 수준의 모방이다. 본질인 Idea로부터 매우 구별되는 특수한 objet를 모방함으로서 제작 및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신이라는 존재 역시 모방을 하는데 그의 모방은 절대적으로 Idea에 합치하는 본질적인 모방이며 창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행위를 이룬다.

- Platon.

예술은 모방의 행위일 뿐이며,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음악, 연극, 책, 이와같은 연극작품들이 주는 대리만족들을 실제와 비교했을 경우에는 환상일 수 있다. 그러나 심리치료에 있어서는 굉장히 효과적이다. 그 환상은 영혼에 상상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문명속에서의 불안, Sigmund Freud.

예술의 기능은 굉장히 긍적적이며 인류에 도움을 준다.
 
예술은 자연의 변형된 형태이다. 그래서 시인은 "무엇인가 "더" 본다." 예술가는 창조자이다.
철학은 예술의 변형이어야 하며 창조는 절대적인 지식이 기반이 되는 행위이다. 방법으로 개념보다는 은유(metaphor)가 필요하다. 증명과 논증보다는 직관적인 비젼이 중요하다.

-
즐거운 지식, Friedrich Nietzsche.

예술은 창조이다.

아나.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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