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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공부가 되지 않으면 도서관 산책에 나선다. 종이 냄새 풀풀 풍기는 책들 사이를 휘젓다보면 가끔 맞닥뜨리는 반가운 이름들이 있는데, 오늘은 왠지 장정일. 직접 다 읽어본 적도 없지만 워낙에 친숙한 이름이어서 책 세권을 몽땅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공부가 안되서 책을 읽는다."라 한편으로는 참 긍정적이지만 내가 들고 있는 나침반이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나는 내가 왜 책을 읽는지는 종종 까리하다. 와중에 장정일씨가 말하는 책을 읽어야 할 이유랄까.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적 쾌락.. 더보기
궤변론자 수정1 얼마전에 읽었던 『헌법의 풍경』에서 저자인 김두식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니던 때에 한 교수의 수업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시험보는 기계를 양산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 토론수업을 하고, 학생에게 윤리적, 존재론적 혹은 인식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업 시간중에 지목된 학생은 주장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미국의 교수는 학생의 주장에 반박을 할 뿐이다. 마치 교수의 주장은 없고, 지목당한 학생의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해나가는 뿐인 듯 하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헤겔이 집대성한 변증법 즉 정과 반을 통해 합이라는 진보를 향한 도달과는 다르다. 변증술은 합을 향하여 나간다기보다는 상대의 무지를 일깨워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정正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절대론적 윤.. 더보기
정의란 무엇인가? 라고 제목을 단 마이클의 책이 나온 이후로 다시 한 번 정의는 정의롭지 않게 되었다. 고마가 일하는 미지북스에서 센델비판서적이 나오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정의라는 말은 매혹적이면서도 쉽사리 잡을 수 없는 장미와 같다. 누구라도 장미와 함께 더 아름다워지고, 더 매력적이게 되지만, 매력에 끌려 서투르게 쥔 한 손에는 핏방울이 흐르게 마련이다. 마이클이 적은 책의 마이클의 한 마디를 읽고 정의를 움켜쥐는 것은 장미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요크가家와 랭커스터가家의 혈투 마냥 하나의 빛깔이 담긴 장미를 움켜쥐고 다른 색깔을 까대며 나와 너의 피를 흘리는 것과 뭐가 다를까. 더보기
누군가의 글쓰기. 한 글쓰기 수업에서 감당하지 못 할 비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다시금 글을 쓴다. 이렇게 표현했다. "비유에게 미안했다." "칼날이 나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 상처를 바라봤다." 그리고 비유와 은유로 잔혹한 현실을 비껴볼 수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든다. 정말 비유가 문제였을까, 사실 비유는 문제가 아니였을런지도 모른다. 비유와 은유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서로에 대하여 비스무리한 시각과 시야, 그리고 시력을 바탕으로 힘을 갖게 마련이다. 그는 서둘렀다. 문장은 문장을 휘갈겼던 그를 앞서 나아갔고, 쓰여진 문장의 겉모습은 글 안에서 균형잡힌 구조의 일부를 구성하기보다 그의 습관을 드러냈다. 각 문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은 문자의 사용이었을 뿐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정합성보다 .. 더보기
선택. 이성은 가능한 선택지를 추측하고 파악하는 능력일 따름이다. 선택은 감성의 역할이다. 호불호를 가늠하게 하는 감성의 역할이 가능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하고 행동을 만들어낸다. 경제학이 가진 대전제의 여파일까, 현대에 흔히들 말하는 합리적인 선택은 도구적 이성에 경도되어실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하나의 이데올로기, 세계관, 헤게모니, 관습, 독단으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제한된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인간에 목을 매기에 우리 각자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