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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공장, 이언 뱅크스. 평소에는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를 쉽사리 남기지 못한다. 생각의 꼬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그만큼이나 질기고 긴 생각의 꼬리를 싹뚝 잘라내고서 무언가를 적어 남기는 것은 마치 '나'의 사고의 지평을 한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이언 뱅크스의 『말벌공장』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한가지 무늬의 인상을 각인시켰다. 소설이 끊이지 않는 묘사와 서사 그리고 상징으로 독자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말벌공장에서 이언 뱅크스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사회적인 성性과 육체적인 성性, 그인 동시에 그녀인 주인공 프랭크는 무엇일까. - 이하는 스포일러가 강하고 개인적인 관점이 강하게 개입되어있기에, 책을 읽기전에는 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ㅋㅋㅋ 책의 말미에 이르러 문득 서양에 있었던 한가지.. 더보기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키스 젠킨스 저, 최용찬 역. 역사를 읽는다,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대학 곳곳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설파한다. 왜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할까? 나의 짧은 생각에 사실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역사를 보는 나의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 인생살이 속에서 관계정립과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너무 추상적인데, 사실 잘 모르겠어서.ㅋ).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없이 호기심에서 펼친 책은 실상 "역사는 뭐?"에 한정되지 않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유방법과 자세를 가르쳐 준다. 오랜만에 쾌감을 주는 책이었다. 키스 젠킨스(Keith Jenkins)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원제:Re-thinking H.. 더보기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안토니오 타부키. 추천에 이끌려 읽게 된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는 포루투갈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군부가 스페인 북쪽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폭격한 학살을 그린 그림이다. 책과 크게 관련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소설의 한 일익을 담당한다. 1차 대전 이후 극심한 경제난과 혼란 속에 있던 유럽의 국가들은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과 함께 도미노와 같이 하나 둘 쓰러져 간다. 극심한 경제난과 불안 속에서 등장하는 세력은 항상과 같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속칭 영웅이다. 혼세를 헤치고 영도하는 이도 영웅이고, 시대의 혼돈을 이용해 군중을 선동하는 이도 영웅이니 알고보면 지나고 나서 승리했는가 패배했는가에 따라 히틀러가 되기도 하고, 이승만이 되기도 하나보다... 더보기
기형도 - 홀린사람 모두가 말하지만 모두가 듣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이야기한다. 어리석음이 온 세상에 호통을 치는 형국이다. 간디도 예수도 석가도 누구의 말이라도 듣고 싶은 만큼 알고 싶은 만큼만 이해하기 마련이다. 유리병 속의 쪽지를 읽어야 하는데, 알고보니 유리병을 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유리병 속의 쪽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느냐 모르느냐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안보인다. 유리병 속의 쪽지는 정치적인 의도라고도 하고, 행동에 숨겨져 있는 의미라고도 하더라. 기형도,홀린사람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 더보기
허세 1. 이 책은 보르게스(Borges)에 나오는 한 글귀를 보다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착상한 것이다. 이 웃음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사고, 즉 우리의 시대와 풍토가 새겨져 있는 사고의 모든 지평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에 따라 현존하는 사물들의 야생적인 번식을 길들이려 할 때 사용하는 질서정연한 표층과 지면들은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이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와 그들 간의 관행적인 구분을 혼돈에 빠뜨리고 그 붕괴를 위협해 왔다. 이 글귀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였는데, 거기에서는 동물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 황제에게 속하는 (동물) (2) 방부처리된 (동물) (3) 길든 (동물) (4) 젖을 빠는 돼지들 (5) 사이렌 (반은 여자, 반은 새로 된 요정) (6) 전설상의 (동물) (7)..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