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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계속살기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슴이 저민다.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희덕 - 길 위에서

나는 대체로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외우려는 노력보다는 적은 몇몇의 메모에 의존하기에
가장 좋아하는 시임에도, 그 단어단어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은 시인의 이름마저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상 적음과 버림을 머릿속의 한페이지에 반복하다 보며는 한번쯤은 뒷페이지에 그 흔적이 남을만도 하려마는, 평생 쓰지도 않던 책받침을 사용한 것 마냥, 한 페이지는 이미 낙서로 가득찬 한페이지로 버려진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