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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까뮈를 아십니까. 이방인, Camus.

소설을 읽었다. 수업이 끝나가는 가운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썰을 푸는 선생의 만용에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펼친다. 표지에는 이방인이라 적혀 있고 레트항제라고 읽는다. 내 귀는 막혀 더 이상의 잡음은 없다. 천천히 읽던 부분을 펴든다. 뫼르소는 지금 막 아랍인 샘을 죽였다. 묘사 없는 감옥에 갇힌 뫼르소에게도 시간은 흐르지만 하루하루는 늘 같은 일상이다. 스토리는 점점 더 나를 사로잡는다. 내 집중력에 까뮈의 흥건한 침과 이빨 자국이 남을 정도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배심원들이 앉아 있는 재판정에 등장한 검사, 그리고 검사는 뫼르소의 엄마가 장례를 치루던 날을 되새겼다. 어미의 죽음 앞에서 눈물한점 흘리지 않았던, 밀크커피를 마셨던, 담배를 폈던, 그리고 다음날 마리와 첫 관계로써의 섹스를 했던 뫼르소는 배심원들과 같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배심원 중 그 누구도 뫼르소의 배덕을 의심치 않는 자가 없다. 그렇기에 당연하다. "뫼르소, 사형. 프랑스의 이름으로..." 수업이 끝났다. 개미마냥 한줄로 강의실을 탈출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나도 끼어들었다. K관 4층은 여느 건물과 다름없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갖고 있다. 강의실을 나왔지만 마찬가지이다. 출구를 찾아 줄줄이 앞 사람을 쫓는다. 밖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가방 속에 책의 무게가 평소같지 않았다 느낀 나는 어서 이 짐을 풀어버리고 싶다. 단풍이 아름답고 바람이 시원하다. 그뿐이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꺼내든다.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고, 이야기를 한다.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어머니는 만년에 새로운 '약혼자'를 가졌고, 죽음의 앞에서 생애를 새로이 꾸몄다. 죽음이 가까웠기에 어머니는 해방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피가 거꾸로 돈다. 다리가 작은 떨림으로 헤맨다. 하지만 얼굴이 찌푸려지지는 않는다. 뫼르소에게서 나를 봤다. 법정에 있는 내내 뫼르소에게 중요한 것은 다름아니다. 뫼르소의 증인으로서 나선 사람들에게 뫼르소는 다름없다. 뫼르소는 친구이고, 증언을 해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랑이고 우정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들의 친구다.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고, 함께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해야 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뫼르소에게 거짓은 없다. 모두가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죽였다. 살인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사형이라는 형벌을 내리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법정에 있는 내내 뫼르소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 그뿐이다. 육체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