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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책의 우주,에코+카리에르 대담. 토낙 사회. 임호경 역. 열린책들

우연히 서점 한 쪽 벽에 꽂혀 있는 『책의 우주』. 제목만으로도 책 좋아한다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호기심이 끓어올랐고, 거기다가 한국에서는 쉽사리 접하기 힘든 대담집. 그런데다가 대담의 두 화자는 프랑스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인 카리에르와 이탈리아의 상식박사이자 기호학자인 에코였다. 그래서 나는 샀다.

둘 다 저명하다는 것을 빼고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말도 안되는 책 덕후다. 그러니 깜찍하고 아기자기한 책의 표지에 반해 그 내용은 우주와 같이 방대하다. 유럽의 수많은 소설가, 시인, 권력자, 철학자의 이름이 두 덕후의 입에서 쏟아지고, 이미 사라진 유럽의 인간들이 파괴한 책, 창조한 책, 비롯된 건축물, 남겨진 생각, 뿐만아니라 문화의 단면들까지 두 덕후의 기억속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온다. 가지가 많이 뻗친 책이라고나 할까. 『책의 우주』에 뿌리를 두고 뻗치는 나무가지들은 어떤 과거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기억과 인간 스스로 행한 기억의 여과작용에까지 하염없이 자라난다. 나의 짧은 생각에도 가지들을 일일이 살피려면 족히 1년에 100권씩 5년은 읽어야 될 터이다.

책에 관한 그들의 대담은 마음 맞는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며 갖는 즐거운 시간의 일부인 양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친한 친구와의 대화처럼 서로 먼저 나서서 들려주는 재미있는 예화는 사방으로 튄다. 세기의 책 덕후 두명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묘미는 쏠쏠하고, 이따금 들리는 사회자 M.토낙의 역할에 감사할 뿐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책은 몇페이지가 됐을까? 두 덕후의 기억은 어디에도 담을 수 없다. 아마 e-book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암.

책들에 대해서 말하는 책, 관심을 갖고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하여 말하는 책, 관심을 갖고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하여 손꼽히는 두 책 덕후가 푼 썰로 구성된 책. 바로 이 책 『책의 우주』다.

인간은 실로 굉장한 존재죠. 그는 불을 발견했고, 도시들을 세웠고, 눈부신 시들을 썼고, 세계에 대한 해석들을 행했으며,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동류(同類)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오류를 범했고, 또 자신의 환경을 파괴해 왔지요. 이 드높은 지적 미덕과 한심한 짓거리를 서로 견주어 보면 거의 비등비등하다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바보짓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반은 천재이고 반은 바보인 존재에게 바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p.243

에코는 간단하게 인간을 정의했다. 흔히들 책을 두고서 기억의 저장고라 말한다.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라고 하듯 말이다. 기억을 읽는 이도 인간, 기억을 남기는 이도 인간, 기억을 파기하는 이도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색은 사라진, 읽히지 않는, 읽히는 책들을 남겨두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각주:1] 이후로 1500년12월31일까지 출판 된 책들은 잉큐레뷸러라는 이름을 가지고 고가에 거래된다. 구텐베르크의 성경 초판 인쇄본이 다소곳이 꽂혀있는 서랍장을 가진 노부인과의 만남을 꿈꾸는 에코와, 말살된 <언어> 마야의 작품이 땅 속에서 툭하고 튀어나오기를 바라는 카리에르가 보여주는 애서가의 모습에서부터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고 파는 어느 재력가에게까지 책이란 여러모로 소중하다. 정보전달매체라는 책의 본질적인 속성을 제쳐 둔다면 서양의 책이란 한국의 책과 다를지도 모른다. 

애서가와 재력가덕택에 책은 예전보다 덜 파괴되고, 그만큼 읽히지 않는 책들도 많아지고 있다. 서양의 기억은 지나간 문명의 언어들을 곱씹으며 확장을 계속한다. 인간이 파괴와 창조의 두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진 야누스와 같더라도, 남겨진 혹은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는 힘이야말로 서양철학 발전의 동력이 아닐까.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정보전달의 수단으로서 책만큼 효율적인 발명품은 아직 없습니다. 컴퓨터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원에 연결되어야만 하지요. 하지만 책에는 이런 문제점이 없습니다.......책은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 번 발명되고 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필요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아요.
                                                                                                                            p.139


한국에는 잉큐레더블이 없구나, 아니 잉큐레뷸러의 상징을 갖는 고서적들이 있을까? 있더라도 지금의 한국말로는 읽을 수 없겠지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책의 우주』한국에서는 더 이상 연속적인 문화를 맛 볼 수 없다. 결국 에코와 카리에르의 대화는 연속적인 문화가 단절된 것에 대한 한탄과 서양 라틴어에 대한 질투심을 가져다 주었다. 그럼에도 책은 바퀴와도 같다는 에코의 한마디는 내가 읽는 책도 포스트-잉큐레뷸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힘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짧게 카리에르의 한마디.

누군가가 말했죠. 독서는 처벌받지 않는 비행(非行)이다라고요. 이 사람의 예는 독서가 하나의 진정한 도착증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어쩌면 하나의 페티시즘일 수도 있죠.
                                                                                                                            p.306


  1. 1400년대 중반, 현재의 인터넷의 보급과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파급력을 가졌던 발명으로서 이후의 종교개혁을 비롯하여 도서가 대중성을 가지면서 발생한 모든 사건들의 단초가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