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장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안토니오 타부키.


추천에 이끌려 읽게 된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는 포루투갈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군부가 스페인 북쪽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폭격한 학살을 그린 그림이다. 책과 크게 관련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소설의 한 일익을 담당한다. 1차 대전 이후 극심한 경제난과 혼란 속에 있던 유럽의 국가들은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과 함께 도미노와 같이 하나 둘 쓰러져 간다. 극심한 경제난과 불안 속에서 등장하는 세력은 항상과 같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속칭 영웅이다. 혼세를 헤치고 영도하는 이도 영웅이고, 시대의 혼돈을 이용해 군중을 선동하는 이도 영웅이니 알고보면 지나고 나서 승리했는가 패배했는가에 따라 히틀러가 되기도 하고, 이승만이 되기도 하나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웅을 싫어한다.) 그러한 온 세계가 격변에 몸서리치던 그 시기, 그중에서도 유럽 이베리아 반도 끝머리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 포루투갈, 그 좁은 땅에서 한 언론인이 고민하고, 변화하는 이야기다.

각설하고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에서 페레이라는 주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주장한다. 늘 특이한 종결어미를 사용하며 마치 페레이라가 주장하고, 안토니오 타부키가 받아 적은 듯한 인상을 준다. 독특한 전개만큼 이야기가 독특하지는 않은데, 때문에 작자가 종결어미에 꼼수를 부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용은 평범하리만치 흔하게 상영되는 영화 속 한 개인의 변화이다. 예전에 들어봤던 단어로는 입체적 인물[각주:1]이라고 했던가? 주인공인 페레이라는 입체적 인물이다. (물론 행위의 측면에서일 뿐이고, 그의 내면은 이미 원하는 한가지가 뚜렸하다.)

그는 기자인데 문화부에서 일하는 기자일뿐이다. 몇해전에 사망한 부인의 사진과 함께하며, 하물며 부인이 숨을 못 쉴까 걱정하며 사진을 똑바로 세워둔다. 그는 꿈을 꾼다. 페레이라는 꿈 속에서 늘 부인과 함께 했던 가장 행복한 시간에 머물러 있다. 소설에서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인용하는데 그에 따르면 페레이라의 이드는 초자아에 억눌려 발현되지 못한다. 페레이라의 초자아는 계속해서 그의 이드를 억누르기만 한다. 자아가 나타나 그 둘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데 자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의 이드는 무엇일까. 단지 꿈 속의 부인을 만나는 것이 그가 욕망하는 모든 것, 이드는 아니다. (물론 소설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 그대로를 사용하여 이드의 범주와 성욕을 동일하게 보지는 않는다.)

스페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네 알잖아, 합법적인 정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량 학살이 자행되고 있네, 모두 어느 맹신자 장군 탓일세. 스페인도 멀리 있어, 실바가 말했다, 우리는 포루투갈에 있고. 그래, 페레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도 상황은 좋지 않아, 경찰이 주인 행세를 하고 사람들을 학살하네.......여론은 앵글로 색슨들, 영국인과 미국인이 만들어놓은 술책이야, 이 여론이란 개념으로.......우리는 그들과 같은 정치체제를 가져본 적이 없어.......우리는 노동조합이 뭔지 모르네, 우리는 남국(南國)사람들이야, 목소리 크고 명령하는 사람에게 복종하지.     

                                                                                                                                          p.57

페레이라는 꿈을 꾸며, 단 한 번도 현실세계로 이드를 해방시키지 못 했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숨겨주던 한 어린 기자가 살해당한다. 비밀경찰인지 알 수 없는 세명의 남자는 영장도 없이 어린 기자를 살해하고, 도망간다. 그리고. 페레이라는 이드를 해방시키고 그의 말을 한다. 당시 포루투갈은 독재정부의 억압으로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하지 못 하고, 누구도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누구도 입소문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책에 대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직접 책을 읽는 것이다. 직접적인 스포는 지양하겠다.ㅋㅋㅋ

또 사전 검열이란 게 있으니까요, 매일 신문이 나가기 전에 기사는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합니다, 신문에 실을 수 없는 문젯거리가 있다면 아마 빈 공간으로 내겠지요, 빈 공간으로 나온 포루트갈 신문들을 본 일이 있습니다, 큰 분노와 슬픔을 안겨줬죠.......카르도주 박사가 장난조로 반박했다, 그건 박사님 정신의 연합에서 우위를 차지할 지배적인 자아에 달렸습니다.  

                                                                                                                                           p.115


 

  1. 고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이다. 평면적 인물의 반대어인 입체적 인물은 작품 안에서 성격이 변화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