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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말벌공장, 이언 뱅크스.

평소에는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를 쉽사리 남기지 못한다. 생각의 꼬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그만큼이나 질기고 긴 생각의 꼬리를 싹뚝 잘라내고서 무언가를 적어 남기는 것은 마치 '나'의 사고의 지평을 한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이언 뱅크스의 『말벌공장』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한가지 무늬의 인상을 각인시켰다. 소설이 끊이지 않는 묘사와 서사 그리고 상징으로 독자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말벌공장에서 이언 뱅크스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사회적인 성性과 육체적인 성性, 그인 동시에 그녀인 주인공 프랭크는 무엇일까.

 

        - 이하는 스포일러가 강하고 개인적인 관점이 강하게 개입되어있기에, 책을 읽기전에는 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ㅋㅋㅋ

 

책의 말미에 이르러 문득 서양에 있었던 한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아쉽지만 사건의 전말만을 기억 할 뿐, 행위자의 이름이나 발생했던 장소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건은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를 여자아이에게 남자아이가 되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아이가 남자아이였는지 여자아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결과 아이는 성장하며 자신의 본래 sex와는 다르게 여겼고, 그러한 상태로 성장했다. 부모가 아이의 sex[각주:1]를 부정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당시 서양의 거대담론 중의 하나인 gender[각주:2]에 대한 믿음에 있다.

 

성역할이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여겼던 부모는 아이의 gender를 sex와 분리하였고, 사회화의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아마뱅크스는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였던 gender에 일침을 놓는다.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생물학적 출산능력을 통제하였다는 것인데, 따라서 생물학적인 성인 sex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말벌공장의 아빠는 gender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였다. 교육을 통하여 자녀의 성역할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당시 gender에 대한 논의가 만든 하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현재의 gender연구는 '사적 영역의 민주화'라는 기든스의 주장과 같이 사적 영역에서 스스로가 주권을 갖는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기치를 여성해방과 동일선상에 둔다.)

 

프랭크는 마지막에 남근선망과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사건의 원인을 sex를 부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성을 이야기할 때 그 시작점은 늘 여성의 임신가능성에 의한 모성애와 현실적인 측면이다. 뱅크스는 대담하게도 이러한 면을 여성성의 실체라 인정한다. 육체에 따른 본성을 부정당한 프랭크가 저지른 세건의 살인행위에서 더 나아가, 현재까지 남성으로서 살아온 자신을 죽이고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네번째 살인행위는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일까? 는 생각할 거리로 남는다.

 

프랭크, 그가 아빠에게서 진실을 들을 때까지, 자신의 sex가 여성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하고 아빠의 바지를 벗기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 상징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일은 패턴의 일부이며, 우리는 이 패텬에 대해 적어도 약간의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강자는 자기 자신의 패턴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패턴에 영향을 끼치고, 약자에게는 이미 정해진 진로가 주어진다. 약하고, 운이 나쁘고, 어리석은 자들의 경우에는 말이다.                                         

 p.179


내가 진화의 개념을 이해하고 역사와 농업에 관해 조금 배운 후에는, 내가 비웃던 멍청하고 흰 이 동물, 서로를 좆좆 따라다니고 덤불에 걸려 허우적대는 양들은, 수도 없이 많은 동물 세대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그것들을 키운 농부들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p.223


당시 에릭을 붕괴시켰던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하나의 약점이었고, 진짜 남자라면 결코 가지고 있을 기 없는 근본적인 결점이었다.

p.225

 

 


 


  1. 육체적 특징을 기준으로 가르는 남과 여. (성기의 유무) [본문으로]
  2.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性이며 여성주의가 나누는 중심담론이다. 푸코에 따르면 언제나 인간의 삶을 교차하고 있는 다양한 권력들 사이에 역사적으로자리잡아왔다. (성의 역사, 미셀푸코) 본문에서는 성역할을 나누는 것이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남과 여 사이에는 육체적 구분을 지양해야 한다는 급진적여성주의의 주장에서 나왔다. 진화론이 발전하면서 남과 여가 평등한 성향을 갖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지만, 그조차도 남근선망의 발현이라는 착각에 의한 생각이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나는 모르겟다-_-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