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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

언제 적고 싶어질까?

어느새 연수원에 들어오고서 2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먹고, 자고, 놀고, 싼다. 연수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참 괴이하다고 할 수 있다. 연수원의 삶은 새벽 6시에 기상을 하고, 부은 눈을 비비며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로 얼굴을 가린채 뛰는 농구장에서 시작된다. 농구장을 뛰고 나면 이어 식사를 하고, 8시부터 18시 반까지 눈뜰세 없이 지루한 수업이 이어진다. 원체 어디서 나온지 알 수 없는 말들은 강사의 성향에 따라 단어의 정의가 풍비박산이 난다. 하물며 옷을 스마트하게 입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해피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들으면 이외수가 비꼬던 화이어같은 불꽃 이란 풍자가 떠오를 뿐이다. (정확히 이렇게 비꼬았는지는 미지수다) 여튼 저녁을 먹고 기쁨조가(원체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공연인지는 누구도 명확하게 말 할 수 없다) 되기위해 합창을 하면 어느새 하루가 끝난다. 시간은 대략 21시 반에서 22시 사이. 그때부터 나는 모든 신경을 녹이고 활동을 시작한다.

하루간 괴이했던 점은 이 시간에서야 엽기로 돌변한다. 어떻게든 조소를 보내려 노력해왔지만, 정작 "해피하게 행복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흐느적한 눈가에 주름이 찐해지며 힘이 들어가고, 고막 가까이에 쌓인 먼지덩어리가 소리를 산란스럽게 할까 걱정하며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쑤셔넣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라는 생각은 뜨겁고 깊은 곳에서 울려퍼진다. 증오와 분노의 원천을 쑤셔본 적은 없다. 하지만 증오와 분노는 일말의 복수를 노리지 못하며, 방향을 잃고 끓어 올라 흘러내려온다. 하염없이 내 몸의 근육을 자극한다. 엽기적인 모습은 이때의 얼굴일 것이다. 올라간 입꼬리는 변함없지만 그 모습은 근육을 사용한 인위적인 장난일뿐, 그에 대한 지적인 혐오는 태양빛이 강해 죽였다는 이방인의 뫼르소보다 더욱 우발적으로 얼굴을 빼꼼 드러낸다.

일과를 마치고 들어온 방에서야 비로소 얼굴에 근육이 풀린다. 방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하루종일 내 발을 감싸안아준 양말에게 불결한 축축함을 느끼며 벗어던진다. 연이어 윗통을 까고 아이폰으로 음악을 켠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어깨와 윗배에 조그마한 언덕배기가 올라오면 다리일으키기를 한다. 아랫배가 판판해지고, 치골근이 살짝 튀어나온다. 여기까지다. 씻고, 책을 펼친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시 다음날이 온다. 오늘은 독서를 포기하고, 적었다. 사실 블로깅을 하려던 이유는 "나는 언제 적고 싶어지는가?"는 의문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