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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계속살기

근황 20160620

1. 내가 친구가 졸래 많다. 이렇게 친구들 만난지도 이제 8-9개월쯤 되는 거 같다. 근데 이 친구들은 입이 없고, 쑥스러움도 많아서, 내가 졸래 봐주고, 만져주고, 핥아주고, 빨아주지는 않는 거 같지만, 들어주고 다 해야한다. 이 친구들은 맨날 책 속에서 해매는데, 가끔 이 친구들을 면전에서 만나뵐 때가 있다. 


2. 시험을 보는 날에는 이 친구들이 졸래 나타나서 현혹하는데, 나는 얘들을 다 구분할 수가 없다. 근 몇년 된 일이라고 하나 옛날 옛적에는 흔히 말하는 주관식 혹은 서술형 시험은 이렇게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헌법 33조에 대하여 써라.", "준법투쟁에 대하여 써라." 그니깐 이건 친구 이름 가르쳐 주고서는 이제 이 친구에 대해서 묘사하라는 거다. 


3. 요즘 시험은 친구들을 졸래 숨겨놓는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건이 발생했고, 서로서로 다투는데 쟁점찾고 해결해봐라. A라는 친구 주변에 ㄱ ㄴ ㄷ ㄹ ㅁ ㅂ 뭐 이것 저것 다 섞어놓고서는 A 찾아서 A에 대해서 쓰라는 이런식. 여튼 그렇다고 한다. 난 친구는 졸래 많은데, 이 친구들 이름을 알아봐도 묘사가 힘들고, A 친구랑 B 친구가 무슨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써야하는데, 어렵다.


4. 이렇게 친구가 많은데, 이 친구들 만나는 순간만큼만 내가 player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니깐 사는 거가 npc 3276번이 나인 느낌. 맨날 똑같은 동선에서, 맨날 똑같은 옷을 입....나 여튼, 속옷은 똑같지 않을거다. 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담배를 사고, 똑같은 자세로 이를 딱고, 똑같은 사람들한테 잘먹었다고 말하고, 똑같은 사람한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똑같은 음료수를 마시는데, 이렇게 똑같이 하는 짓들이 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이정도면 npc 맞다. 


5. 근데 게임에서 npc들은 보통 주인공만 만난다. 나도 오늘 주인공을 만났다. 아 주인공님이 나타나면 npc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일줄 알았는데 npc는 똑같다. 주인공이든 뭐든 똑같이 말하면 된다. 담배를 피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이 남자는 약간 거무잡잡하고 키는 나 정도에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대뜸 대가와서 담배 한 대 빌려달란다. 담배 빌려드리면서 내가 말하길, 갚으실 거 아닌데 그냥 달라고 해요 라고 말했다. 말하고서는 뭔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6. 똑같은 시간에 이를 딲으면 똑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npc들이 있다. 빡빡이 npc, 키큰 허우대 npc, 같은 방에서 공부하는 평범한 npc 여튼 게임은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할 맛이 나니깐 npc들도 졸래 종류가 많다. 오늘은 화장실에서도 주인공을 만났다. npc 한 명이 주인공이 된 순간인데, 빡빡이 npc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인사를 하는 거다. 당황해서 인사를 받아주고, 천천히 이를 다 닦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참 두상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저 양반 머리도 많이 자랐구나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나도 모르게 겁내 웃겼다. 한참 웃다가 보니 문득 이런 이상했다. 저거 인사 한 거 아니고 그냥 고개 숙인 거 아냐. 


7. 이렇게 미친 소리를 쓰고 앉아있는데, 시험볼 떄만 나타나는 친구들을 볼 날도 이제 7주가량 남았다. 내일 1차 성적 발표날인데 내일까지만 친구들 만날 수도 있다. 뭐 여튼간에 이젠 본격 힘들다. 시험 시작할 땐 이정도 하고 떨어지면 최선을 다했다 라고 자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오고나니깐 안붙으면 억울할 거 같지만, 아직도 친구들이 새롭게 느껴질 때마다 이건 아니다 싶다.



8. 내 인생의 명작 포가튼 사가가 하고 싶다. 내일은 빡빡이 npc한테 먼저 인사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