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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 문학동네

 

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머니 두 분은,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튕기던 손님들이 카드를 꺼낼 때까지, 식당을 떠나지 못하셨다. 시계에 총을 쏴도 시간이 흐르는 마당에, 사장이 약속한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난지 오래지만, 그만 집에 가라고 손님놈들에개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이제와서 일 시킨 놈을 혼내주고 싶어하시지만, 이 나라는 지시받아서 일을 한 어머니들이 흘러가는 하루에 억지로 선을 그어 시간에 주름을 접어낸 “일을 더 많이 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2년치의 교통카드사용내역을 들고 오셨다. 찬찬히 뜯어보니 하루하루 어머니들이 퇴근하며 밟은 장소들은 홍대와 망원과 신촌이어서, 모두 다 아는 곳들이어서, 그 날 술에 취했던 나의 귀갓길이 떠올라서, 마주쳤던 행인이 어머니였을까 생각이 들어서 슬펐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시인의 말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그 이름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하늘에 있는 마리와 동식이에게
그리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께
이 시집이 따스한 안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