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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아파트 공화국 - 발레리 쥴레죠

"책을 본다."라는 의미에는 아마 책의 내용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소개를 듣고, 책의 겉표지를 보고, 책의 삽화를 감상하며 그 책을 들고다니는 행위와 책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까지이다. 2번책을 다 못 읽어서 3번 책은 꼭 읽고 말겠다는 의지로 도전한 "아파트공화국" 저자는 지리학을 연구하는 프랑스 여성이다. 그리고 제목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아파트의 공화국이다.

어쨋든 서론 다 짜르고 한마디 하려다 보니 책 표지에 4-5포인트 정도의 크기로 적혀있다. "세상은 당신이 사는 곳을 동경합니다.", "이웃도 자부심입니다.", "집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인생의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모두다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채워져 있다. 그리고 아파트를 설명하는 어떤 문장도 어색하지가 않다.

우선 프랑스는 빠리에 고도제한을 두는 노력을 하며 높은 고층빌당을 거부한다. 그 결과 도시는 5층이하의 낮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건물들로 외관을 꾸미게 되었다. (물론 신시가지라 하여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상업지구가 과거 빠리 외곽지역에 건설되었다. 우리나라로보면 여의도만큼도 안되는 크기였던듯 싶다.) 작가는 이러한 나라에서 삶을 살아온 비한국적인 사람의 눈으로 우리의 아파트를 바라본다. 아니 어찌보면 콘크리트 건물의 숲을 바라본다.

문장들로 구성된 책의 표지를 구성한 인물이 쥴레조인지 아니면 출판사측인지 여부는 확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의 표지를 누가 선택을 하였건 간에 표지를 구성하는 문장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주체는 명확하다. 그 주체는 광고 혹은 선전이라는 여론을 선도하는 그리고 무의식중에 사회 일반에 영향을 끼치는 언론매체이다. 문장들은 사회 일반에서 광고방송을 통하여 개인들에게 전파된다. 그리고 접촉 된 광고들은 사회구성원들이 가치판단의 고려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마치 어렸을적 엄마, 혹은 아빠의 말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쉽지만 엄마 아빠의 한마디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은 명확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재미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단 한 발자욱만 뒤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일단 티비 혹은 신문에서 나오는 광고의 모습들을 떠올리면 연달아 생각의 가지가 치고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점이 존재함은 명확하다. 광고에서 최고 상종가를 치는 모델들의 등장과 마치 유럽의 Castle을 연상시키는 광고에서 더이상 아파트는 차디찬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다. 따듯한 "즐거운 나의 집"이 되는 동시에 명품을 입고 소비하며 값비싸 차를 모는 "나"의 가치와 오버랩된다. 사고의 근저에서 아파트는 이미 우리가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버린 상품의 의미를 갖게 된다.

집의 개념은 "즐거운 나의 집"이지만 그 즐거움은 과거의 합께하는 삶과는 큰 거리를 갖는다. 쥴레죠의 말에서와 같이 집은 더 이상 소통과 가족의 협동성 그리고 서로 도와가는 삶과는 거리감을 갖는다. 집은 들어올 때부터 무인 인식시스템에 근거하여 들어 올수 있는 존재와 들어 올수 없는 존재를 나누기 시작한다. Castle이라는 단어는 유럽의 고풍스럽고 서양적인 이미지로 한정되지 않는다. Castle은 말그대로 귀족과 평민을 나누는 그리고 거주민과 비거주민을 분별하여 수용하는 계급적인 차별의 공간이 된다.

책의 중간중간에 프랑스의 banlieu(한:도시 외곽의 영세민 거주지역 정도)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 공간의 거주민들은 서류상으로는 공화국의 국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거주민 자신들이 느끼는 정체성은 banlieu의 거주민일 뿐이다. 몇번의 소요사태 혹은 사회에 관한 반항에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공화국(프랑스)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100%수용하지 않는 프랑스 국가에서도 그들을 거주민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의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안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이 공간은 세습되며 더 좋은 거주지를 열망하는 한국의 중상류층이상의 계급에서는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는 유목민의 습성을 되살아난다. 유목민의 자유로움은 강조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더 좋은 장소만을 찾아가려는 무책임함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유목의 과정에서 남는 흔적은 직간접적인 더 낮은 계층의 피해뿐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문명이 자연을 휩쓸고 지나가듯이 어떠한 자연스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쫓아 온 중산층 혹은 영세민의 빚과 흔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랑스의 banlieu가 영세민을 수용하는 사회에서의 쉽게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수용하는 공간이라면 한국의 castle로 대표되는 중상류층 이상의 공간은 떨똥이 아닌 너무나 잘 적응한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사회 주류들을 위한 공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높은 건물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그들이 모셔져 있는 공간에는 오만가지의 편의 시설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시설의 종업원들은 과거의 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계급의 공간, 유럽에서는 중세에만 존재하였던 성의 귀족과 성밖의 일반민들의 관계가 한국에서는 현시대에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누가 만들었다고 하는가? 땅이 좁기 때문에 아파트를 권장한 정부? 더 좋은 집을 열망하는 중상류층? 돈을 벌기 위해 광고를 때리는 건설회사? 혹은 광고회사? 쥴레죠는 말한다. 집이 더이상 거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이 되면서 그리고 아파트가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는 한국민들의 서양적인 현대적인 이미지에 대한 투영이 일어 났을 때가 시작이라고.

-뭔가 대략 써두고 보니깐 이건 뭐 불평 불만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초딩 때쟁이가 떠오르는 것은 뭔가-_- 쥴레조가 castle이라는 체제가 완벽히 자리잡은 현시대에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파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해주는 책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