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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침묵 - 엔도 슈사쿠.

"너는 그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너 때문에 저사람들이 죽어간단 말이다."
                                                                                                      p.212

밟아도 좋다. 네 발의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p.267

증오의 감정과 모멸의 감정을 저쪽도 이쪽도 서로 안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페레이라를 증오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남자의 유혹에 의해 배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페레이라 속에서 자신의 싶은 상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보는 사실이 견딜 수 없듯이, 눈앞에 앉아있는 페레이라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옷을 입고 일본말을 사용하고 자신과 똑같이 교회에서 추방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p.276

기지치로의 울먹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 세상에는 말입니다.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는 어떤 고통이라도 극복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만, 저같이 천성이 약한 자는 성화를 밟으라는 관리의 고문을 받으면.." 그 성화 위에 나도 발을 놓았다.........이 격렬한 기쁨의 감정을 기치지로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강한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약한 자보다 강한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신부는 문 쪽을 향해 빨리 말했다.

좋다는 소문을 워낙 들어놔서 도서관 온김에 읽었다. 뭐 전체적인 스토리는 한 신부가 일본에 선교를 위해 도착하고, 그가 존경했지만 이미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며, 그 역시도 굉장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행위적인 배교를 하게 된다는 이런 두리뭉실한 나의 스토리 소개이지만, 실제 책 낱장낱장에는 배교하게 되는 신부의 고민과 갈등이 너무나 공감을 이끌어 내도록 적힌 소설이더라.

어쨋든 다 읽고 나니 엔도슈사쿠라는 작가가 인정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굉장히 민감한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무신론자도 아닌 신부가 고민하지만 고민이 발생하는 그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동시에 신부가 배교행위를 하는 장면에서의 심리상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 역시 그의 갈등을 함께하게 된다. 어찌보면 작가는 글의 처음부터 말미까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주제로 고민하는 신부의 모습과, 자기방어를 위해서는 처음에 실행한 배신 이상의 행위를 해야하는 배신자의 논리를 부각시킨다. 책은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신부의 행동 생각 하나하나를 다 집중해 바라본다.

다 읽은 후 신부의 내적 갈등의 표현법과 그러한 갈등을 유발하는 신부를 둘러싼 상황설정,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부와 유다의 일치화는 진짜 최고인듯. 그리고 굳은 심지던 약한 심지던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더 깊게 해주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