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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화장 한 남자, 화장 안 한 여자.

어두운 무대에 불이 들어온다. 조명에 눈이 부시고, 객석에 앉은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 무대에 올라가기를 두려워하던 '그'는 커튼 사이로 빼꼼히 객석을 살핀다. 조명의 빛은 비추지 않지만 하얀 점들이 빼곡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빼곡한 하얀 점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지금이 나가야 하는 바로 그 때이다.

희뿌옇게 분칠을 한 얼굴 위로 새빨간 코, 시퍼런 입술, 풍성한 갈색 빛깔 머리칼이 인상적이다. 지금 이 순간, 수십번 올라갔던 무대임에도 느낌은 늘 다르다. 마찬가지인 것은 가운데 위치한 '그'와 '그'를 주시하는 수 백개의 하얀 점들뿐이다. 화장을 한 '그'와 하지 않은 '그'는 분명 다르다. 무대 위에서의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화장을 한 '그'이다. 화장품을 바른 스스로를 상대의 눈이 판단하는 바에 맡기는 객체일 뿐이다.

등장에 박수소리가 울린다. 혹자는 말하였다. "연기는 제 인생이에요." 한때 장난삼아 술자리 안주로 씹어먹었던 그 말은 이제 시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무대에 서 있는 '그'는 단지 가리고, 숨기고, 바꾼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구차한 진실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대에서의 삶은 '그'의 단면일 뿐이다. 인생일 수 일생일 수 없다. 지금 무대에 올라간 '그'는 무대 위에 서 있는 광대다. 광대의 목표는 30분간 수 백개의 하얀 점들이 더욱 빨리 깜빡이게 그리고 하얀 치아가 보이도록 웃음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화장으로 얼굴을 가린 '그'의 마음에 두려움은 일순 사라진다. 웃음으로 메워진 관객석은 '그'를 화장한 남자라 일컫는다. 갸냘픈 목소리의 걸죽한 입담이 이어지고, 관객들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갸냘픈 체구의 과장스러운 몸짓이 바람을 만들고, 관객석의 하얀 점들은 더욱 빨리 깜박인다. 멈추지 않고 30분 내내 이 소통은 계속된다. 30분이 경과했다. 화장 위로 흐르는 땀망울을 닦아내는 그의 소매에 화장가루가 묻는다. 얼핏 매끈한 피부가 비친다. 이제 퇴장할 그 순간이다.

과거의 '그'는 짙은 화장을 즐기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가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화장은 삶의 구차함을 감추고, 슬픔과 기쁨을 숨기고, 스스로를 바꾸는 무기가 되었다. 화장은 '그'가 두려움을 이겨내는 수단이자, '그'가 누구인지 가릴 수 있는 도구이다. 이번 무대의 제목은 "화장한 남자, 화장 안 한 여자"이다. 한 시간 후면 무대는 끝이 난다. 무대 뒤편에는 다음 배우들이 화장을 하고 있다. '그'가 그리고 '그녀'가 누구였는지는 화장 아래 숨겨져 알 수가 없다. 보여주기 위해 가리는 화장에 슬픔을 느낄새가 없다. 무대에 서 있는  '그'는  '그'이지만  '그'가 아니다. 한 침대에 몸을 포갠 남녀마저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는 분명 보여줬으나 관객들은 '그'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가. 

옛 영화「선물」의 이영애가 죽었다. 분장을 한 이정재가 운다.
웃을 준비가 된 그들은 웃는다. 울 준비가 된 우리는 운다. 

'그'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두터운 화장으로 감추었다. 진짜 '그'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본질은 있는가? 적어도 이 무대에서 '그'의 본질은 아이 하나를 가진 미혼모가 아니다. 남성의 전유물인 광대 역을 담당하는 '그'이다.

마지막 무대가 끝이 났다. "화장 한 남자, 화장 안 한 여자" 에 출현한 그들이 밝은 무대에 서야 할 순간이다. 곧 객석에 불이 켜지고 하얀 점들은 관객들의 눈동자였음이 드러날 것이다. 광대 역을 맡은 미혼모는 화장을 지웠고, 몸매의 윤곽은 드러나지만 두터운 후드티에 펑퍼짐한 츄리닝은 그의 정체를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못한다. '그'의 등장에 관객들의 눈은 다시 한번 깜박인다. 그리고 누군가 이야기 한다. "공연시간 끝난 거 아냐?" 미혼모, '그'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무대의 한가운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