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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20120605

공부가 되지 않으면 도서관 산책에 나선다. 종이 냄새 풀풀 풍기는 책들 사이를 휘젓다보면 가끔 맞닥뜨리는 반가운 이름들이 있는데, 오늘은 왠지 장정일. 직접 다 읽어본 적도 없지만 워낙에 친숙한 이름이어서 책 세권을 몽땅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공부가 안되서 책을 읽는다."라 한편으로는 참 긍정적이지만 내가 들고 있는 나침반이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나는 내가 왜 책을 읽는지는 종종 까리하다. 와중에 장정일씨가 말하는 책을 읽어야 할 이유랄까.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적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장정일, 생각, p.167

 

얼마전에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맹신하는가?에 대한 응답이었는데,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호퍼는 공리부터 출발하는 엄밀한 논리구조를 세우지는 않지만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정합적인 가설을 세운다. 가난할수록 주체적인 자신감이 결여되어있다.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은 집단의 가치에 자기자신을 쏟아붓은 채 희생을 불사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집단의 가치에 투영한다. 집단의 가치 상승을 자신의 가치 상승과 동일하게 보면서 지속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관념적인 만족과 물질적인 급부가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관념과 물질 사이의 이분법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가 왔을 때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관념적으로는 여전히 예측가능한 세상을 원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지, 호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변화보다는 그대로 계속되어 예측불가능성을 최소화 하려는 열망은 변화를 두려움으로, 두려움을 기존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와 수구세력에 대한 긍정으로 향하게 한다. 결국 물질적인 빈곤을 관념적인 만족으로 극복한다. 물질적으로 가장 가난하지만 마음은 너희들과 마찬가지라는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의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는 구절은 이제 푸념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가 되어 내면화시킨 시를 읊는 화자의 다음 세대는 습관적으로 자기를 기만하며 자위한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가난한 자는 빈궁을 직시하지 않게 해줄 지금까지의 좋은 세상을 지켜줄 구관, 당신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