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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장미의 이름

매일 같은 코스다. 블로그에 무언가를 적고 앉아있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적고싶으니까 이런게 아니라 과제같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급작스럽게 떠오르는 상념들을 낚아채서 남겨놓고 싶은 욕구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보는데 이번에는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의 작품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백 마디 하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낫기 때문에 적지 않겠다. 라고 적어두지만 실은 뭔 이야기인지 다 알아먹을 수가 없다. 읽다보면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도원을 상상하게 되고, 수도원의 도서관에 있는 책이 궁금할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시의 생각들과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약초 이름부터 별 것들이 다 나오는데, 이루 다 나열할 수가 없다. 당시 교황과 황제의 대립에서 시작해 첨예한 논쟁거리였던 사제의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먹었던 음식은 물론이고 유명한 인물들과 수도원의 내부 장식을 묘사하는 장면도 있다. 더불어 비밀에 쌓인 도서관에 꽂혀있는 서책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 부분이 아주 가관이다. 시각視覺에 관한 이야기, 신에 관한 이야기, 약초, 선善, 광학기술 그 외에도 고시의 한 부분 성인들의 행적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뿐만 아니라 섹스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부분이 조금 의아하다. 왠 수도원에 섹스?라고 하겠지만 읽어보면 안다. 그러하다. 거기까지 읽어내려가는 데에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읽어보려고 맘 먹었으면 끝까지 가봐야지, 그래도 다행인 것이 섹스는 마지막 부분에 나오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아있는 파편들만 나열해 봤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궁극적으로 이 책은 추리물이다. 추리물은 추리물인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넘치는 개성이 문제라면 문제. 거기다가 에코라는 사람이 혼자 적었지만 그 내용은 수많은 기호를 나타내는 기호들의 총체인 서적을 기반으로 한지라, 주인공들이 여간 박식하지가 않다.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서양 중세의 학자들 이름은 읽는 나를 움츠리게 하지만, 그런 부분은 가뿐하게 패쓰해줘도 좋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누구나 이름 한 번 쯤은 들어본 책을 추리물 정도로 격하한다고 욕 먹을까봐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간단하게나마 남겨보려 한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선(善)해야만 그 대상에 기울이는 사랑이 참 사랑일 수 있는 법이다.」

「베노 수도사는 이제 제 손에 들어온 서책의 선을 지킨답시고 그 책을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부터 지킬 터인데 어떻게 이것을 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서책의 선은 읽혀지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 사상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로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름 없다.」

p.736

 

이렇게 남겨진 부분이 책에 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윌리엄 수도사는 영국의 오컴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오컴이라 할 것 같으면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해진 양반이다. 후에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사용하는데,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에 있어서 무거운 지방덩어리를 다 잘라내 버리면 본질만이 남는다는 그런 이야기. 오컴의 면도날은 이 뿐만 아니라 흄도 사용한다. 흄은 그래서 결국에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라며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라 칭해지기도 하는 인물이다. 즉 귀납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이쪽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나온 경험을 중시하는 계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면 이런 저런 자료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면 어떤 목적이 있다며, telos(목적인)을 최고의 원인으로 둔다. 언젠가 들어봤을지도 모르지만 4원인 이라고 해서 형상인, 질료인, 목적인, 운동인 이 있다. 4원인은 워낙에 인터넷에 잘 설명되어 있어서 나는 패스하겠다. (클릭하면 4원인 뜬다.) 그런데 뚝 잘라온 저기에 책과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선은 목적인이라는 생각. 경험주의적인 생각, 나도 너무나 공감하는 생각.

 

인간도 그러한가? populus라는 말이 로마시대에 있었듯 정치에 참여함만이 진정한 선이라고 생각했던 당시를 넘어서 지금은 조금 다르다. 생각하기 힘들어서 다음에 이어 적어야겠다.

 

+그러면서 공개로 적는 까닭은 비공개로 하면 다시는 안 볼 것 같아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