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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계속살기

20190721 근황

오랜만에 주말 이틀을 다 쉬었다.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쉴 때 알게 된다. 쉬지 않는 삶이 일상이 되면 일상에 함몰돼서 관성에 따라 끌려가기 마련이다. 주 6일제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해 왔고, 9시 출근해서 저녁 상담을 마쳐서야 집 문을 열었다. 현관문에 풍경종을 달아뒀는데, 청아한 종소리에 마음이 풀어지기도 했으나, 가끔은 그 청아한 울림에 다른 집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노동3권을 행사하겠다는 사람을 만나고, 노동3권을 설명해주고, 부조리, 불합리한 상황을 만드는 기괴한 권위에 숨죽이고 살지 말자고 이야기를 해왔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고, 어느새 지난 시간은 1년 반이다. 어느 순간부터 만난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만 알아본다. 내가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수준 떨어지는 핑계다. 언제부턴가 그들이 궁금하지 않다. 해고당하지 않고, 잘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서 상대방을 꺾기 위해 모든 촉각은 아군과 적군의 구도에서 적군에게만 들어서 있다.

 

일을 시작하면서 잘 드는 칼이 되어야지. 라고 시작했던 마음가짐이 있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에 대해 풍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게 신념인 사람들이 있는 세계에서, 무엇보다도 불법을 밥먹듯이 하며 준법의식이 아니라 안걸리면 그만이라는 풍토에서 보통만 하려고 해도, 이기지 않으면 안됐다. 그렇게 칼이 점점 날카로워졌고, 공무원을 만나든 사용자를 만나든 호통치고 비난하고 비꼬는 태도가 일상이 됐다.

 

이틀의 여유동안, 침핀으로 그림엽서와 인쇄된 천을 벽에 고정했더니 집 분위기가 확 살고, 이번 여름 처음으로 선풍기를 꺼내서 찌든 때를 털어내고 씻어냈다. 마포구민체육센터에 찾아가 헬스장 1일 이용권을 4,000원을 내고 구매해 운동도 했고, 운동하면서 티비도 봤다. 3주 만에 집 청소를 했고,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도 4/5정도까지 읽었다. 

 

장강명의 르포는 한국사회에 적어도 추천보다는 공정해보이고,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 당선과 합격의 제도, 즉 문학계에 등단인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문학상을 비롯해, 대기업입사제도인 삼성의 채용제도 및 로스쿨, 수능제도 등을 업계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통계 그리고 기사로 진단하고. 비좁은 입구를 비집고 들어가 합격하면 계급이 바뀌는 현실을 신랄하게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당선과 합격의 제도가 쓸모가 있는지를 다루는 건 물론이다.

 

쉬지 않는 삶이 일상이 되고, 상대를 이겨먹는 태도가 일상이 되는 와중에 오랜만에 책을 읽고, 이틀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오만가지 생각을 드는대로 다 적고 말하는 무지막지하고도 무식해서 용감한 능력이 있었는데, 어느새 말을 아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됐나보다. 

 

뭐 우선 사무실에 예고한 퇴사일까지는 이제 41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