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 이/계속살기

20200909 디스크 환자의 통증일기 1

이러한 좁은 의미의 '병력'속에는 주체가 없다. 오늘날의 임상보고에는 주체가 '삼엽색체백색증에 걸린 21세 여성'과. 같은 피상적인 문구 안에 넌지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런 식의 병력은 인간이 아니라 쥐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병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뗴에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개 되는 것이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섹스, 조석현 역, 이정호 그림


1.

신경의학과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인 올리버 섹스 교수님의 글을 인용하며 나의 허리디스크(다른 말로 추간판탈출증,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추 및 기타 추간판장애, 디스크환자 등등 많은 명칭으로 불리는 이 질병) 일기를 적으려니 마음 한 켠에 죄송한 마음이 문득 들지만, 아시아 대륙 한 켠에 삼면이 바다이고, 한쪽 면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육지섬에 사는 인간이 교수님을 기억하며 글을 쓸줄은 몰랐겠지. 암 그렇고 말고. 


2. 

내 허리 통증의 역사는 굉장히 긴데, 그 시작은 육지섬을 구성하는 철조망 근처에서 한 군생활 때였다. 당시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닌다는 나의 이력이 특혜로 비춰진 일이 있었는데 그건 군대에서 제안받은 행정병자리였다. 특혜를 받지 않겠다는 보통사람에 대한 지향이 있던 나는 행정병 자리 제안을 다 마다했고, 그러다 휴전선이라고 지도에 표시해 두고 철조망으로 육지에 휴전선을 그려 둔 철책을 경계하는 부대였고, 부대원 450명 중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재학 중인 사람이 3명뿐인 부대였으며, 사방이 산이고, 계곡물이 흐르고 맷돼지가 뛰어노는 산 속 GOP 부대에 배정을 받았다.


2-1.

저 설명을 왜 구구절절했냐면 저 선택이 2020년 내 통증의 미약한 근원이요 창대한 마비의 시작이라. 우선 행정병 마다하고 철책을 경계하러 올라갔지만, 막상 GOP에서는 까라면 까라는 군대의 종족적 성질머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대학다닌다는 이유로 GOP행정상황병이 됐고, 근무 여건은 입으로는 3교대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2교대로서, 하루 12시간 정도를  포장마차 의자에 앉아서 구부정한 자세로 일했다. 그렇게 5-6개월 뒤 여름이 왔고, 진지공사에 끌려나가 삽질을 좀 하고 났더니 다리에 강도 10점 만점에 10점의 통증이 와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때도 수술을 안하고 나은 후 부대에 복귀해 만기전역을 했다는 그런 나만 슬픈 이야기..


2-2.

저때 상태를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진지공사로 허리를 급하고 격렬하게 사용한 뒤 자고 일어났더니 골반부터 발가락 끝까지가 뻣뻣해져서 무릎을 접거나,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던 그런 상태로서 마비는 물론이고, 10점 만점에 강도 10의 극심한 통증을 느낀 상태였다. 당시 내 마음은 나이 23에 다리 불구가 되어 앞으로 양말도 못신는 처지가 되는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었는데, 웬걸 2주 정도 쉬었더니 걸을 수 있었고, 군병원에서 1달 정도 보존적 치료 후 부대에 무사 복귀..


3. 

그 이후 몸이 기억하는 통증의 공포는 내가 건강을 유지하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었다. 헬스도 종종 했고, 맨손 운동은 꾸준히 했다. 척추 기립근을 세웠고, 배에는 투팩부터 식스팩까지 다 만들어봤고, 허벅지를 두껍게 유지했고, 엉덩이를 탄탄하게 만들었고, 몸에 근육량을 유지했었던 적도 있었다는 즉 건강하게 살아왔다는 과거적 사실..


4. 

그리고...이번 사달이 났다. 때는 2020년 6월 29일로, 이미 2019년 12월에도 진료를 해주셨던 신경외과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다리 저림이 계속된다고 말하니 의사선생님 왈 당장 입원해서 MRI 촬영을 하고, 상태를 진단하고, 주사도 맞자는 거다. 이미 정기적인 다리 통증으로 회사에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한 전력이 있던 나는 그 상황에서도 처리할 업무 생각을 하며 "지금 입원을 해도 되나?"란 무지한 고민을 한 끝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종종 환자를 신나게 하는 의사 선생님의 멘트를 들었는데, "여태 어떻게 참았어요? 많이 아팠겠다."라고 말씀을 하시자 나는 '내가 통증을 잘 참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진 동시에 '나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현인을 마주한 기쁨'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그 때 선생님의 모니터에는 MRI 이미지가 올려져 있었고, 영롱한 뼈 사이로는 디스크가  우악스럽게 혀를 내뽑고 있었다.


5. 

적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우선은 여기까지만 적고 다음 이야기는 이어서 적으려 하는데, 2020. 6. 29.당시의 통증 강도는 5-6정도였고, 당시에 맞은 주사는 신경차단술 주사다. 알려진 신경차단술의 효과는 디스크가 신경을 압박해 발생한 신경 주위의 염증을 씻어내 통증을 약화시키는 거다. 디스크 환자가 다리 방사통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수핵과 섬유륜으로 구성된 추간판에 손상이 와서 섬유륜을 찢고 수핵이 튀어나와 신경에 닿게 되는데, 그 신경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염증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통증의 원인은 신경에 발생한 염증이니 우선은 염증을 씻어내자며 염증 부위에 스테로이드 및 식염수를 뿌리는 게 신경성형술 및 신경차단술인 거고, 그럼 왜 튀어나온 디스크를 힘으로 돌려넣지 않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물리적으로 집어넣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신경차단술과 신경성형술은 같은 원리로 통증은 완화하는 시술법인며, 다른 점은 튜브를 삽입하는 성형술이 차단술보다 더 정교하게 염증 부위를 겨냥해서 쏠 수 있다고들 하더라. 신경성형술과 신경차단술의 시술 후 후기는 뒤 편에서...


6.

그렇게 이후 약을 먹고 통증이 줄어들자 몸이 괜찮아졌다는 착각을 해서 야근을 지속했고 음주를 하며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떠돈 결과지는 2020. 7. 27. 10점 만점짜리 통증으로 돌려받게 된다. 이후 오늘로 여름휴가, 연차, 병가를 모두 끌어다 써서 7주째 와병중이다. 2020. 9. 9. 현상태를 앞서 말하자면 10분 이상 앉아있으면 다리에 쥐가 나는 반면, 설거지 및 청소기를 돌릴 수 있게 된 차도에 선명한 희망을 갖고 통증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