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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

검은 꽃, 김영하.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요시다는 이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대통령궁으로 걸어들어갔다.
p.260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제치하로 조선이 넘어가기 직전, 한반도에 살고 있던 수많은 빈자들(몰락한 양반, 백정, 신부, 군인등등)이 하와이 이주에 이어 맥시코로 이주노동자로 팔려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들은 노예문서에 도장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들을 넘기는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 좋게 말하면 이주노동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예인 그들이 타고 가는 배에서는 죽음과 틴생이, 전염병에 의한 사망과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출생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배의 창고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씼기라는 행위는 배제되며 자연스럽게 인간 고유의 체취에 인간들은 반응하게 된다. 다소 다른 점은 있지만 공간에 조건으로 제약을 가한다는 점에서 문득 "눈먼자들의 도시"의 잔혹성이 떠올랐지만, "검은 꽃"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과 무당의 살풀이를 통하여 다소 무마하는 느낌을 준다. 물론 책의 목표점이 인간이 동물과도 같은 야만성과 잔혹성을 드러내는 데에 있지 않았기에 "이정"과 "연수"라는 주인공격인 두 인물의 추이를 쫓는데에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멕시코 땅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은 희극과 비극의 두가지 삶을 함께 살아간다. 당연하게 만날 것이라 예상한 인물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수많은 고난을 겪고, 모든 주인공들의 삶은 시대의 사회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수많은 군상들의 이야기들이 있고, 큰 성격의 변화를 체험하는 인물은 없으나, 그들이 자리하는 지리적, 문화적 환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일방통행 길로 그들을 몰아붙인다. 하나같이 조선 땅에서 났으며, 다른 나라라고도 발 한번 붙여 본적 없는 그들이지만, 각자의 삶은 개별적인 삶일뿐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다양한 군상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당의 이야기인데, 무당이란 한반도에서 사라진 샤머니즘이라는 개념정도만을 가졌던 나에게 겨우 100년 지났을 뿐인 20세기 초반의 한반도 땅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랄까. 무당에 관한 책을 한권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리저리하여 책의 말미에 몇몇 조선인들은 그들의 세를 규합한다. 그리고 건국을 통하여 그들의 죽음과 정체성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나라가 있든 없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지? 이정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있든 없든 상관없다면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하나쯤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차라리 무국적은 어때? 돌석이 말했다. 이정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 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래.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 무국적이 되려고 해도 나라가 필요한 거라구.
p.306

왜 무정부주의에 열광하는가? 그리고 왜 그들은 나라를 건국하는가? 단순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다. 물론, 건국의 영웅이 되기 위함은 더욱 아니다. 단순히 죽음을 위하여 건국을 한다. 결국 삶은 죽음이며 죽음 이후에 어떤식으로 가죽을 남기던, 개인은 단일의 국적을 가진 존재로 흔적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두려워 한다. 죽은 후에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다. 그보담은 남은 자들의 입과 손가락에 놀아날 뿐이다. 
뭐 이정도.

김영하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것 저것 읽어봤으나, 그리고 다 좋으나 뭐니뭐니해도 최고는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더 훑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