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결국 얼레리 꼴레리

 

문득 내 안의 괴물을 느꼈다. 나는 옆에 누운 그녀를 겁탈하고 겁탈하고 또 겁탈했다. 내 안의 괴물은 그녀 안의 괴물을 향하여 '우리'가 되자는 언어를 뱉어낸다. 우리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나, 매캐한 향과 함께 우리는 깨져나간다. 한판의 놀이는 이렇게 끝났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명하던 시절에 순결캔디를 받았다. '순결'이라는 이음절의 단어의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가꾸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선생님은 설명했다. 물론 아이들이 선생님의 재미없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영국 교주의 정액과 피가 섞인 캔디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이 캔디를 먹고 나이가 들어서 섹스를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고 했다. 내가 사탕을 먹는지 안 먹는지는 선생님이 주의를 기울여 확인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미 순결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나와 친구들을 쑥덕거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말을 이어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탕에서 시작한 잡담은 어느새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고, 우리의 사고는 터진 봇물마냥 사방을 적셔나갔다. 섹스는 영화에나 나올 금발미녀들이 몸에 기름을 바른 채 헐벗고는 근육질의 헐크 호간들과 함께 어색한 자세를 하고서 등장하는 playboy 잡지에나 나오는 단어였고, 정액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단어였다. 우리가 그거였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한 친구에게 멍청아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태초의 경험을 자극했던가? 라는 의문은 당시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을 뿐이다. 그 단어들은 우리에게 선생님에게 들킬 수 없는 우리만의 금기어였을 뿐이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러한 요상한 단어들이었다. 덧붙이자면 피는 수가 뒤틀려 주먹질 하고 싸울 때 승부를 결정지어주는 코에서 나오는 승부의 척도였다.

'순결'은 재미가 없는 단어였다. 의미도 없었고, 의미를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캔디의 맛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다.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것은 놀이였고, 놀이는 재미가 있어야 했다. 역시나 재미가 없는 선생님의 말보다는 주워들은 소문과 나름의 진지한 잡담이 재미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 누가 누군가와 둘이 있었다는 소문, 어른의 용어로는 연애의 초입이었을지 모를 누구랑 누구가 둘이 있었다는 얼레리 꼴레리.


발랄한 네온사인 아래로 사람들이 부대낀다. 골목길 사이로 침이 흥건한 담배가 바닥을 뒹굴고 터지는 리듬이 지하 어딘가로부터 몸을 울린다. 나는 조금이라도 리듬의 중심에 다가서고자 지하로 발을 옮겼다. 공간을 가득채운 사람들 사이로 나의 시선은 비집고 들어가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발은 느렸지만 눈동자는 빨랐고, 던져진 시선은 발이 가야할 곳을 인도한다. 구석에 자리한 바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이 있었고, 클럽에 어울리는 화장은 볼을 볼륨감있게, 눈가를 검은빛으로 잡아늘여 커다란 눈이 시선을 흩뿌리게 돕고 있었다. anna lesko의 get it의 리듬이 폭발한다. 시선은 흩뿌려지지만 날카롭게 몸의 맵시와 얼굴의 윤곽을 훑었고, 시선이 교차할 때마다 인연의 붉은 끈은 엮이고 꼬인다. 비로소 몸은 바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목소리는 음악에 묻혀 퍼지지 않았다. 음악이 만드는 분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에게 평등을 주고 있었다. 시선이 꽂히는 것은 가슴과 코와 입과 그와 그녀들이다. 당장에 부와 명예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옷을 입었는지, 성형을 했는지, 좋은 것을 많이 먹어 피부가 좋은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둘수도 없었다. 발광하는 조명이 옷과 피부에 반사되어 나올 때의 그 단색만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들어왔다. 환각제와 같은 단색의 빛깔들은 그 장소의 모두가 끌림을 발산케 했다. 입고 있는 옷과 몸매와 화장은 빛과 어우러져 끌림을 이끌고, 끌림은 가늘지만 헤어질때까지 끊기지 않을 인연의 끈을 구성해나갔다.

'골목에 있던 침이 흥건한 담배가 뭐였더라?' 나의 끌림이 닿은 곳에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VIRGINIA SLIM(버지니야 슬림)이다. 미국의 한 담배업체가 여성을 위한 담배라고 광고하는 이 담배의 이름은 VIRGIN '순결'한 그녀를 상기시켰다. '순결'한 그녀는 연기를 내뿜어 그녀의 손가락을 감싼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타들어가는 담배 끝을 향했고, 그에 닿아있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봤다. 인연의 끈일까? 나는 이 놀이의 목적이 떠올랐다. 붉은 끈이라나 어쩐다나? 인연의 끈은 이렇게 나를 '우리'에게로 모셔다 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와서 닿았고 인연의 끈은 점점 짧아졌다. 시선에서 출발해, 이제 서로는 몸을 밀착시키기 시작한다. 끊이지 않는 춤은 종착점을 찾아가고, 그때는 음악의 박자가 바뀔 때 즈음이고, VIRGIN이라는 담배가 생을 다할 때이다. 새로운 놀이를 시작할 때는 바로 그때다.


우리의 연애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끝난 적이 없고, 끝나지 않았지만 시작한 적이 없다. 많은 낭만주의 소설들은 역경을 딛고 도달하는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이라 여겼고, 그렇기에 난관을 겪어낸 주인공들에게 사랑이라는 행복을 소유할 자격을 부여했다면, 그렇게 끝난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책을 덮은 나의 상상력과 혼합되어 항구적인 로맨스를 남겨뒀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랑을 쫓지 않는 불나방들은 잉크통의 뚜껑을 따고 잉크를 흘려보낼 시간이라는 백지를 찾아 헤맸다. 등속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는 같은 백지를 가지고 있었고, 잉크통의 뚜껑을 따는 순간 우리의 백지는 육성과 몸짓에 같은 빛깔로 물들었다. 우리의 연애에 남겨진 것은 흘러나온 땀과 매캐한 살 냄새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감각이 지워지면서 우리는 다시금 나로 돌아간다.


1968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반항처럼 지미 헨드릭스가 등장해 조롱 섞어 기타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소리 지르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우리는 할당된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리는 함께 누군가를 향해 야유를 보내지 못하며, '우리'를 지어 당시 히피들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는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우리를 갈구하지만 '너'는 '나'로부터 '나'는 '너'로부터 멀어졌다. 우리의 잡담은 클럽의 입구 골목길에서 클럽에서 그리고 둘이 남겨진 공간에 있었다. 그 공간을 나서며 남겨진 것은 또다시 '나'와 또 다른 나인 '너'이다.

주체가 없는 경험이라는 푸코의 말처럼, 87년 6월혁명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나'라는 주체를 꺼내들고 주체가 없는 경험만을 덧씌워 '나'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욕망한다. 공유된 우리의 경험은 알 수 없는 단어인 '우리'를 갈구하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나의 쾌락, 나의 만족, 나의 자유는 우리를 찾아 헤매는 끝없는 걸음의 방식이다. 결코 다다를 수 없을 '우리'로의 열망은 잡담으로 끝난 순결캔디에 관한 진지한 고찰처럼 놀이로 귀결되어 버렸다. '우리'를 원하지만 '우리'를 알지 못해 다다를 수 없는 '나'는 여전히 정액과 순결과 섹스를 모르던 초등학교의 학생이다. 결국 '나'의 연애는 끝날 수 없는 '우리'의 유희 얼레리 꼴레리.

Posted by na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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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mo 2012.08.05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2. BlogIcon mater 2012.08.07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빨고 썼구만. 요사이 읽은거 중 최고다

  3. BlogIcon Nangbi 2012.08.17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써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