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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20121113 신념부재.

글쓰기를 많이 하고 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적어내려가다 보면 무언가 걸리적 거리는 껀덕지가 있다. '직관'이라는 경험을 통한 표상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달아 본다. 한 예술가는 감각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중에 특정 경험을 하면 표상이 맺힌다고 했다.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난다, 미학자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침에 읽은 책 혹은 드라마 영화의 이미지가 어떤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할 때 떠올라 결합하여 모호한 인상을 갖게 된다면, 이는 일종의 표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불명확한 껀덕지에 걸리적 거리는 느낌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적는 족족 제출을 하는데 곧 평가로 이어진다. 흔히 이러한 평이 나온다. "글을 장악하지 못함, 저자의 미끄러짐, 불분명하고 논리적 건전성이 떨어지는 표현." 이러한 평을 받는 까닭은 분명히 내가 나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련의 표상의 범람에 있다. 사고는 단어로 범주화되고 위계화되어야 나를 빠져나올 수 있다. 표상은 단어를 통해 나를 빠져나와 상대에게 나아가 닿았을 때 의미를 갖는데, 표상 간의 논리성은 내적으로만 정합적이기 일쑤다. (내적 정합성조차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이것은 뺌.ㅋ) 그럼 변환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자료의 양을 세계의 사실과 동등한 수준에 맞추어 정합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늘 어렵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하는 표상은 나아가 닿지 않으며, 내 머리 안에서 다른 감각자료와 짬뽕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표상을 일으킨 시발점조차도 잊는다.

 

우선 개인적인 논리를 세계에의 논리에 맞추고, 적합한 단어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러려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나는 "책을 읽어서 글솜씨가 늘어난다고 내게 어떤 도움이 생길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 우선은 그냥 하는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