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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개

어둠<L'Obscurité>, Pierre Arnold MAHOUKOU, 부산국제춤마켓 2013



야생이 들끓는 공간이었다. 암막으로 둘러쌓인 네모난 공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실체였다. 블랙박스라 불리는 네모난 상자 안에 있던 단 하나의 생명체는 공기를 흔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손짓 하나, 공기를 울리는 허리의 튕김 그리고 공기는 빛을 머금은 새하얀 옷으로 명암을 달리했다. 하나의 생명체는 공간을 덮은 음악 속에서 강약을 달리했고, 몸을 떨었다. 그렇게 근육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근육 갈기가 다시 엉겨 붙기를 여러번, 비로소 네모난 공간은 생명으로 가득찼다.  


공연 내내 블랙박스라 불리는 어두운 공간 안의 빛은 기계에서 떨어지는 조명과 라이터의 불빛 둘 뿐이었다. Arnold는 적막한 무대에 올랐다. 은은한 조명 속에서 doucement(약하게)을 외치던 Arnold는 없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그는 doucement(약하게)을 끊임없이 외쳤다. 더 약하게, 더 약하게, 더, 더, 눈을 부시게 했던 밝은 빛이 Arnold의 형상을 어렴풋하게 남길때 즈음 그는 Stop이라고 외쳤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야 공연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암흑이 일렁였다. 그리고 조명이 Arnold를 비췄다. 그믐달빛보다 약한 광도의 빛 속에서 Arnold는 꿈틀거렸다. 천천히 하지만 크게, 흑인 특유의 생명력이 부드러운 몸짓 속에서 울부짖었다. 부드러운 춤을 끝 마친 Arnold는 빛이 바랜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Arnold는 라이터의 기름을 태웠고, 수억만년 전부터 응축되어온 폐름기의 흔적은 가장 야생에 가까운 그의 손 안에서 타기 시작했다. 라이터에 불을 붙인 순간부터 Arnold는 폐름기부터 억압된 분노를 폭발시키려는 하나의 가장 오래된 야수가 되었다.


약한 빛이 야수를 쫓았다. 손에 든 라이터에 불이 들어올 때 야수는 한 걸음 내딛었고, 라이터 불빛 너머로 조명기계는 빛을 밝혔다. 사각형의 빛과 동그라미 모양의 빛, 블랙박스의 모든 빛은 단 하나의 야수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었다. 야수의 걸음과 야수의 몸짓은 빛이 왜 그곳을 비추는지를 말해주었던 것이다. 야수는 멈추지 않았다. 


야수는 어둠 속에서 근육을 떨었고, 공기는 반응했다. 야수의 열기가 어두운 공간을 채웠고, 역설적으로 조명과 라이터의 빛은 뜨거움이 아니라 따사로웠다. 은혜의 빛줄기 속에서 야수는 온몸으로 작열하는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공연 링크(1:30부터 시작)

http://youtu.be/X4EYhoqZmy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