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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이/계속살기

20210124 디스크 환자의 통증일기 2

     보면

 

     우리가 섬기는 기쁨이 우리를 기뻐할까

 

     날지 않기로 결정한 새에게 우리는 가혹하게 군다

     회복기의 환자에게 요구한다

    일어나 걷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태양에 기뻐하라고

     어서 눈 뜨고 저 달빛도 보라고

     보면

     어둠은 본 사람을 제단으로 삼는다

     제물 된 것이 몸 위에 얹혀 있다

     난도질하기

     태우기

     연기를 크게 피우기

     ......

     몸 위에서 어둠은 자유롭다

     우리가 잠든 사이 몸 위에서 많은 일이 벌어진다

     가끔 잠들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렇게 한다

 

        - 희망은 사랑을 한다, 김복희

 

 

1.

김복희 시인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한 친구와 서점에 가서 소개를 받고 책 날개를 젖히자 마자 사겠단 결정을 했다. 시인의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아서인데 그 문구는 이러했다. "나는 아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싶다"

 

2.

[보면]이란 시를 보고선 고통받는 환자에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여라"고 하는 조언 속에서 환자는 이면의 어둠에 파묻히고, 이러한 어둠이 실은 보편적이라는 말을 해주는 거 같았고, 그 다음으론 결국 "남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다"는 경구가 떠올라서 문득 적어두고는 어둠과 같았던 나의 허리디스크 투병기 2탄 시작

 

3. 

사실 한 번 반쯤 적었다가 날렸다. 그 빡침은 뭐... 각설하고 6.29. 첫 입원과 7.27. 첫 쓰러짐까지의 경과를 적으려하는데 앞으로 7.27.을. D-Day로 삼아서 전후의 증상과 경과 그리고 나의 활동내역을 적을 거다. D-는 D-Day 이전이고 D+는 D-Day 이후로 표기하려고 함. 우선 나는 추간판탈출증으로 요추5-천추1이 가장 심하고, 요추4-요추5는 다소 덜한 그런 상태였고, 6.29. mri촬영 당시 의사 선생님 말은 통증 관리가 되면 상태를 보다가 무더위가 끝나는 8월 말에 수술을 하자고 한 상태였는데...

 

4. 

첫 입원인 6.29.(D-28) 의사선생님은 입원을 추천하며 우선 며칠 쉬어보란 거였다. 당시엔 "출퇴근을 택시타고 했고", 택시를 타고 다닌 이유는 다리에 늘상 10점 만점에 6점 정도의 저릿함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입원한 동안 속칭 신경차단술이라고 하는 디스크와 신경 사이에 생긴 염증에 진통제 및 소염제를 뿌리는 시술을 받았고, 받는 내내 의사 쌤께서는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건드리면 안될 부위를 건드리는 느낌.... 이상한 부위에 찬 약물을 뿌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동시에 입원하는 동안 소염제와 진통제를 링거로 맞으면서 조금 나아졌고, 7.4.(D-23) 뉴가바 캡슐 100mg과 트라미펜세미정325mg/37.5mg을 1주일치 처방받았다. 뉴가바 캡슐의 복용량은 성인의 경우 회당 300mg이라고 하는데 복용 초기에는 잠이 올 수 있어서 소량을 처방해보고 그 양을 늘린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디스크는 당장 수술을 할 생각이 없는 경우에는 통증을 관리하면서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지금 상태가 최악의 상태이고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수술을 하겠단 결정을 하지 않고 8월 말까지 2달을 기다려보려던 거였는데, 아직 통증의 심화 과정은 28일이나 남았었다.

 

5. 

매회 100mg복용하면서 통증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해졌고, 수면욕이 과하지 않아서 1주일 후인 7.14.(D-13)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뉴가바 캡슐 복용량을 회당 300mg으로 늘렸고, 트라미펜세미정325mg/37.5mg을 그대로 먹었다.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두려운 마음이 커서 상급종합병원(3차 진료기관)에 가기 위해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았고, 우선 예약을 걸어두고는 또 열심히 일을 했는데 당시는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팀 보육사업단에서 일하던 시절로, 보육교사들의 노동권을 포함한 인권 향상을 위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이런 저런 단체교섭 등을 진행하며 야근을 하다가 밤 11시까지 일을 하는 날이 쌓이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약을 먹어서인지 통증이 엄청나게 심하지 않아서 다시 일을 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6.

7.18.(D-9)에 친구 결혼식 전 청첩장 모임에 앉아서 2시간 정도 1차에 앉아있다가 2차 장소로 옮기기 위해 걸으려는 순간 왼쪽 종아리 바깥부터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통증이 허리까지 압박(통증 10점 만점에 9점)해서 이제는 다리가 아니라 허리가 아픈 수준에 다다랐다. 바로 택시타고 집으로 귀가 그리고는 우선 19일까지 집에 누워만 있다가..

 

7.20.(D-7)은 월요일로 기자회견 날이여서,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대림까지 택시타고 가고, 사무실에서 주섬주섬 현수막, 피켓, 기자회견문, 보도자료 등의 물품을 챙긴 후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총연맹 건물까지 갔는데, 거기서 기자회견 내내 내 얼굴을 본 다른 분들 왈.."얼굴이 흙빛이에요"라고 하고 나는 디스크 방사통으로 인해 3분 걷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다가..

 

7.21.(D-6)에 서울시 강남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에 가서 신경외과 교수한테 "아파 죽겠다"고 하자 의사 왈 "당연히 아프죠." 그리고는 mri를 보면서 약 1분 정도.. 정말 1분이었다. 당시에는 당장 수술을 할 마음도 있어서 "아파 죽겠다"고 또 말하니깐 의사 왈 "나는 초진에 수술 안해줘요"라고 하더니 나가라는 거다. 그래서 "아파 죽겠는데요?" 이랬더니 의사 왈 "내가 처방해주는 약 먹어요"라고 하고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한 1분짜리 상담 끗... 그리고는 주사 한 방 맞으라는데 그것도 3일 후에 다시 오란다.. 처방받은 약은 처방전에 "마약"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리리카캡슐 75mg과 뉴신타 서방정 50mg. 뉴신타 서방정은 마약성 진통제라고 한다. 여튼 약을 먹으니깐 또 조금 괜찮은 거 같았는데..

 

7.24.(D-3) 상급종합병원에서 다시금 신경차단술이라는 주사를 맞자고 해서 마취통증학과에 궁디를 까고 누웠더니 차갑고 긴 주삿바늘을 엉덩이와 척추뼈 사이의 어딘가로 쑤욱 집어넣고 나서는 진통제+소염제를 쐈는데 맞을 때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은 백신주사를 맞을 때 등 이미 경험한 그것이었는데, 통증 감소의 효과는 전혀 보지 못했다. 약물을 주사하기 전부터 의사가 말해주시길 염증이 있는 부위에 정확하게 주사를 하는 게 아니라, 염증으로 생각되는 부위에 약물을 뿌리는 거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여튼 당시에 맞은 주사값은 27,600원(밖에서 맞으면 비싸다던데.. 여긴 왜 싼지 모르겠.. 이거 그냥 주사를 놓는 거라서 건강보험 급여였던 듯)

 

7.26.(D-1) 하.. 이 날은 욕부터 하고 시작해야 한다.. 이때까지 내가 가진 생각은... 감기나 근육통 처럼 며칠 쉬면 낫는 거고 약먹으면 괜찮겠지라는 또 하나의 오만...이었는데 이게 디스크라는 병을 본질적으로 오판했던 거다. 의사들은 구글에 찾아보면 나온다는 이유로 그냥 쉬라고 했지만, 그 쉬는 기간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말 좀 해주지.. 그걸 누구도 안해줬던 거다라며 괜히 책임 한 번 돌리고 ㅅㅂㅅㅂㅅㅂㅅㅂ 일케 욕을 하면서.. D-Day 전날 나는.. 찬 바닥에 3시간 정도 누워서 "새덕후"라는 유튜브를 봤고.. 엎드려서 1시간 정도 계속 "새덕후"라는 유튜브를 봤는데..

 

7.

7.27.(D-Day) 대망의 디데이... 이 날은 비가 왔고, 나도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내 마음 속에서도 울었고, 거기다가 내 온 몸도 식은땀으로 피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힘을 줄 수도 없고, 허리를 세우려 힘을 가하면 몸에 식은땀부터 나고, 침대 매트리스가 출렁거리는 것조차 통증으로 왔다. 하루 종일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 속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프로흡연러였던 나이지만 담배를 피러 나갈 생각조차 못했고, 방에서 화장실까지 약 6미터 정도 되는데 우산을 지팡이로 짚고 가서는 소변만 보고 의자에 앉을 수도 없어서 대변은 볼 생각도 못했다. 다리저림, 허벅지 찢어지는 느낌, 더 올라가서는 허리가 끊어지는 느낌이 왔던 대망의 디스크 터짐 시작날..

 

8. 

우선 여기까지 적고.. 다음 편은 다시 적으려는데 8.12.(D+17) 칭송해 마지않을 프레시안 기자분께서 지팡이를 사주셔서,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기 시작했고, 8.26.(D+31) 시속 1km 미만으로 거북이 1시간을 걸을 수 있게 됐고, 9.7.(D+43)에 시속 2km로 1만보 걷기를 시작한 뒤, 오늘 날짜 기준으로 2021. 1. 24.(D+182)일째인 지금은 하루에 3킬로 정도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통증 10점 만점에 통증 곡선은 10점 만점부터 우하향을 하며 내려왔다. 중간 중간에 걷다가 자전거가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도 있었고, 발바닥에 차갑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느낌이 멈추지 않아서 신경이 손상됐다는 강한 의심도 있었으며, 아침마다 사람을 괴롭히는 기상통은 다리부터 골반까지 가만두지 않았는데, 하루 23시간 누워있는 기적과 같은 삶을 유지한 덕에 지금은 차도가 있다. 다음 편을 언제 적을지 모르지만 다음 편은 D-Day이후의 사건위주로서 재활단계를 적을 거다. 그리고 D-Day전 몸무게는 약 73-74킬로였는데, 현재 몸무게는 68킬로정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