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걸 개 2012. 11. 5. 16:55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려서 '무엇이든 주는 나무'라는 짤막한 동화를 읽었다. 동화책이라 했지만 실은 그림책이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었지만 노란색이었고, 줄기는 갈색이었지만 동시에 붉은색이었다. 나무가 너무 예뻤고, 그래서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당시 그 나무를 좋아했던 것은 확실한데 그 이야기를 좋아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니 나무 삽화를 좋아했던 게 아니고 실은 그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기억이야 늘 변하니까 뭐. 


나무는 아이와 함께 커나갔다. 나무는 아이에게 늘 물었고, 아이에게 늘 베풀었다. 나무는 늘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야 무슨 일 있니? 그럼 아이는 득달같이 말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에는 배가 고프다며, 여름 날에는 너무 덥다며, 여느 날에는 그네가 타고 싶다며 귀엽게 투덜댔다. 나무는 배가 고프다는 아이에게 말 없이 사과를 주었고, 나뭇잎을 간들간들 흔들어 그늘 아래 아이를 앉혔고, 선뜻 가지를 하나 내주어 그네를 매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어느새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는데, 성인이 된 아이는 이제 예전만큼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찾아 온 아이는 배우자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아이는 나무 아래 앉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무는 늘 그래왔듯이 또 한 번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야, 무슨 일 있니?" 아이는 그 물음에 배우자를 보내고서는 나무에게 답했다. "이제 아이가 생길 것인데, 집을 지어야 할 것 같아." 나무는 말 없이 아이 앞으로 나무가지를 흔들어 한 아름이 넘는 줄기를 뽐냈고, 이를 본 아이는 곧장 도끼를 가지고 와 나무를 잘라 집을 지었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아이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다시금 나무를 찾아왔다. 밑동부리만 남은 나무는 어김없이 "아이야, 무슨 일 있니?"라고 물었고, 아이는 지친 허리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이제는 앉아서 쉴 의자 하나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나무는 세월에 맨들맨들해진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 


나무는 묻기만 했고, 그 자리에만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두고 올때마다 물었다. 나무는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어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갈동말동한다. 

그런데 있는 것(자연과 어버이) 귀한 줄 모르고 달라고만 하는 저 철딱서니 없는 놈(인간)은 좀 맞자.





Posted by nami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Nangbi 2012.11.05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판판전 ㅋㅋㅋ

  2. 2012.11.05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namit 2012.11.07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나무는 아무것도 주기 싫을 수도 있는데, ㅋㅋㅋ사실 나무는 아무 말도 안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히 내가 나무를 좋아해서리 이렇게 적어놓아봤어욤-_-

    • 2012.11.08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3. 2013.03.05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친하고 싶어서 보여주려 하는데, 너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끄고서는 손을 들어 오징어잡이 배를 가리켰다. "난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너를 사랑해." 그이는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나를 사랑한더랬다. 그이는 동해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오징어잡이 배가 저만치 보이기도 했고, 그이는 어려서 오징어잡이 배에 올랐다고 했다. “다른 단어는 필요치 않아”(라고 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둠 속에서 그이의 몸을 더듬어 손을 찾았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물었다. "차라리 모래알이라고 하지?"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그이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힘을 주어 대답했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멀리 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한 곳에 모이고 떨어졌다. 불빛 너머의 수평선은 이미 지워졌다. 그래서일까 하늘은 바다였고 바다는 하늘이었다. "바다도 하늘도 없어진 것 같아." 라고 나는 불쑥 말했다. "옛날에는 하늘도 바다도 다 하나였다고 아버지가 그랬어. 그런데 어떤 신이 나타나서 갈라버렸대. 하늘이 갈라지고 바다가 무너지던 그날부터 이렇게 됐대." "그럼 그전에는 오징어가 하늘에서 날아 다녔겠구만?" 나는 킥킥대며 다시금 질문했다. "그때는 너도 나도 오징어 였을 런지도 모르지, 저기 하늘의 빛방울을 향해 날아가는 그런 오징어."

 

  그이는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별도 그리고 오징어잡이배도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와 밤기운에 담겨 있는 하늘과 바다에 잠겨 나는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하늘에는 오징어가 꿈을 꾸며 날아다니고 저기 멀리에는 태양이 있었다. 그런데 그 태양은 하늘같은 바다에 잠겨있었고, 해저에 있었지만 꺼지지 않고 빛을 발산했다. 태양이 빛나는데도 오징어들은 심해와 같은 하늘 속을 유영했다. 물리학의 법칙 따위는 모두 무시한 세계에서는 빛도 빛이 가득한 삽화와 같이 단절된 채로 남겨져있었고, 절대적인 질량을 가진 하나의 대상으로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는 하늘 어딘가에서도 자연규칙을 지키려는 듯이 다리를 쭉 피며 흐느적거려 움직였다. 멍하니 상상을 하느라 그이가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오징어고 뭐고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던 것일지는 모르겠다. 하늘도 바다도 불빛도 모두 지워졌다. 멍하니 입술을 포개고, 혀를 받았다. 사냥감을 포착해 준비중인 오징어처럼, 그리고 사냥감을 잡아 놓치지 않으려는 오징어 마냥 혀를 감싸 안았다. 혀는 꼬였고, 다리도 따라서 비비꼬였다. 여태 오징어이야기를 해서 그랬나, 나는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밤이 새도록 빛을 찾아 상승하는 오징어의 모습으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추웠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바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본적이 없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가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뭐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새 6년 전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지금도 이곳 동해다.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함께했던 그 사람은 아마도 바다와 하늘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날도 달이 없는 밤이었다. 싸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무심코 바다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 한 켠에 빛이 뭉쳐있었다. 그 날 우리는 엠티에 와 있었다.

 

  3월의 어느 날이었고, 다른 학교의 친구는 누가 엠티를 동해까지 가냐고 이야기했었다. 대학생활의 첫 엠티여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3월 2일부터 시작되어 온 술자리가 즐겁지 않았다. 선배는 1년을 더 살았다는 까닭에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를 설파했다. "선배, 대학교 인간관계 피상적이라는데 어때요?" "피상적이기는요, 오히려 자유롭게 만나니까 서로 맞는 사람끼리 더 친하게 지내죠." 웃는 선배의 뒤로 신입생은 이야기를 이었다. "정말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오기 전에 대학교 인간관계는 수박 겉 핥기 식이라고 하던데.." "대학생활 잘 못하면 그러기도 해요. 술 먹고 같이 노는 거 재밌잖아? 그래서 이렇게 술 먹고 그러면 놀릴 거리도 생기고, 진짜 이야기는 다 가고 한 테이블만 남았을 때부터 라니깐, 얼마나 재밌는대. 그럼 한잔 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술을 먹고 놀았던 나는 그 해 여름에 열린 월드컵 때 처음으로 전교에서 100등안에 들었다. 특별히 공부를 더하지는 않았다. 월드컵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웠던지 모두가 산화하였고 나는 400 명중100등이라는 쾌거를 올렸었다. 이전의 성적표에는 '우우우우우미양우미미양'만이 찍혀있었다. 처음으로 수가 찍혀있던 성적표에 여드름범벅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될 수 있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을 끊었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던 친구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한켠에서 술병을 깨뜨리며 "씨발"이라고 함께 외쳤던 친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때 우리가 외쳤던 "씨발"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술에 취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점점 몸이 술에 익숙해지던 때 이제 그 시간에만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던 게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술을 마셨고, 나는 공부를 했다. 무엇을 공부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누가 하라지도 않은 재수를 했고, 대학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술집에 있는 선배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이야기는 다 가고 한 테이블만 남았을 때부터 라니깐......."

 

  나는 6년 전 동해로 떠나는 엠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짐은 없었고, 바람이 상쾌했다. 한 재밌는 선배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야 동해도 날씨 좋아, 이거 바람 거서 오는 거." 유쾌했다. '다 공부 열심히 해서 들어왔잖아, 그럴리가 없어.' 공부와 인격이 정비례하는 그래프는 사실 경제학 수업이 끝나면 지워지는 칠판 위의 수요 공급 그래프보다도 더 현실에 들어맞지 않았지만, 그렇게 여겼고, 모두와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찌 보면 다행스럽게도 기차 안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빈궁한 대학생 신분에 맞게 입석을 끊었고, 좌석 사이에 꾸겨져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다. 셋, 넷이 모여 있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도착한 동해는 역시나 날씨가 좋았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80년대 운동권 중 PD계열이 득세했던 과 분위기는 여전히 80년대의 낭만에 취해있었다. 사양도 권유도 자유롭게 무엇이나 개인의 자유다. 반성폭력자치규약도 있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선배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였던지, '너 술 안 먹어?' '야 FM!' '이 새끼 장난하나' 는 들리지 않았다. 몸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인 합의였던지, 선배들간의 합의에서 도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없었다. 아니면 모두가 순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온했던 술자리는 10시가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고 있던 걸까. 네 다섯 명이 둥글게 앉았던 테이블에서는 누군가는 목소리로, 누군가는 몸으로, 누군가는 친구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게임을 하는 테이블에서는 게임을 못하는 친구가 술에 취했고, 방으로 실려 들어갔다. 모두가 자신의 장점으로 누구인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어필하기에 바빴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도, 전적으로 드러나는 외모에도 관심을 읽고서 온전히 관계에 대한 열망과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득세했다. 말이 없었던 나의 존재는 침잠해갔다. 그 펜션 안에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괴물들만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래 이래서 그런갑다.' 혼잣말을 했다. 자기를 내어 보이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교를 힘겹게 들어 온 모두가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하나였다. '오래갈 친구, 피상적이지 않은 인간관계, 그러기 위한 생존투쟁' 그 안의 괴물들은 그나마 한 달 동안 알아왔던 면면으로 서로를 놀려먹었고, 그들 안의 거인들은 어느새 몸을 찢고 나와 나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20세기 초, 중반의 진화론자가 와서 관찰했다면 논문을 백 편을 쓰지 않았을, 분명히 잘난 애들은 살아남겠지. 거기다가 유전자 좋은 애들이 살아남는다고 하려나. 어쨌든 뻥 치는 애들이 그럴까? 잘 갈구는 애들. 역시 똑같아,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결국에 독한 애들, 더 구미에 맞는 애들이 살아남는 거겠지.' 라고 비웃던 중 얼굴이 붉어진 한 친구가 내 곁으로 왔다. "뭐가 다를 게, 뭐가 없어?"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뭐 다 똑같다고..." "뭐가 똑같냐고" "아니 그냥 고등학교 때 술 먹던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술 마시는 거 끝나면 뭐하겠어, 결국 과에서 선배들 눈에 드는 애들이나, 끼리끼리 비슷한 애들끼리 놀겠지. 그리고 수 틀리면 제 갈길 가는 것이고." "너도 느꼈어? 그니깐 지금 좋을 땐데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뭐가?." "그렇지..너 나 동해 사람인 것 아냐? 가자 일로 쭉 가면 바단데 디게 좋은 거 있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 날 이후로 TV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에서 오징어잡이배가 나오면 늘 유심히 봤다. 그리고 그이에게 물었었다. '오징어잡이는 봄에 안 한다던데?' '응? 에이 너가 몰라서 그래' 그날 이후로 손을 잡고 다니던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오징어는 어떻게 섹스를 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이의 대답에서 나는 신뢰를 잃었다. '그런걸 묻냐, 진짜 이상한 애야.' 나는 다리가 비비꼬이던 때 이후, 그 시뻘건 것이 우리를 연결했던 그날부터 오징어는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궁금했다. '동해에서 나서 공부만 했던 걔는 우등생이었겠지, 그냥 당당하고 싶어 했던 것 뿐이야, 드러내고 싶어 했고 내가 맘에 들었겠지...'

 

  9월의 바람은 차지만은 않았다. 함께 온 친구들은 손으로 양팔을 비비며 나왔다. "저기 멀리 저 불빛 오징어 배야." "뻥 치시네, 그 예전부터 오징어 타령" "니들 아냐? 요즘에는 지구 온난화래잖어? 근데 오징어 수획구역은 점점 남하하는 거야, 이게 지구가 뜨거워져서 남극의 빙하가 녹기 때문에 한류가 동해로 더 많이 유입되는 거래. 정말 클나지 않았어? 이러다가 영화 찍는다니깐, 그 뭐냐 있었잖아 빙하시대 오는 거." 듣던 다른 친구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야, 우리 시대에는 안 오니깐 걱정 마, 그건 그렇고 오징어 어떻게 생식하는 줄은 아냐? 얘네 진짜 신기해, 오징어 다리 많잖아 그 다리가 빨갛게 일어서거든, 그러면 그걸 암컷 오징어한테 찌르는 거거든. 그런데 암컷 한 마리한테 들러붙는 수컷이 한둘이 아닐 것 아냐, 그럼 정자를 모아뒀다가 수정시켜서 알로 낳고 죽는거지. 진짜 불쌍하지 않냐." 또 다른 친구가 놀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럼 그거 전설 속에 나오는 크라켄 이야기 있잖아, 흰수염고래랑 큰 전함 집어 삼킨다는 왕오징어, 그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오징어, 오징어하니깐 시가 떠오르네.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보며 침묵하자 그 친구는 말을 이었다. "아 미안, 그냥 배고프다고." 나는 그 말에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징어를 알까? 오징어가 뭔지 말이야, 우리가 정확히 뭔가를 알 수 있을까?" 모두는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왠 진지한 소리야, 아니지." 6년 전의 나는 나를 이끄는 손길에 따라 도망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모두가 늘 같을지도 모르지, 나를 포함해서, 물론 친하다는 말이 어떤 허풍도, 이야기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친하다면 남극에서 한류가 온다는 쉽게 하는 말, 수획구역은 또 뭐야 어장이겠지. 오징어의 다리 중 긴 것 두 개가 아닌 다리 모두가 생식의 기능을 가졌다는 이야기나, 오징어가 전함을 보고 집어삼킨다는 선원들의 허풍담, 그리고 결국에는 '나'가 배가 고프다는 소리. 그래 각자는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네, 어느 순간이고 할 이야기가 있는 거고, 아는 만큼이든 즉시 떠오르는 것이든 말야. 적당히 허풍도 치고, 헛소리도 해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이야기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다른 생각이 가지를 치고 드러났다. '겨우 오징어 인데 이야기 거참,'

 

  생각의 가지는 동해 행 버스를 타기 전 오전의 젠더스터디에서의 질문에 가서 닿았다. "당신에게 젠더란 무엇입니까? 삶의 경험과 결부시켜서 이야기해볼까요" 그리고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대답을 해보려 속으로 곱씹었다. "모두는 외롭고 고독해서 조금 더 자기 속의 괴물을 혹은 거인을 드러내고 싶어해요. 그래야 친해진다고 여길지도 몰라요. 이제 우리는 말을 이어가게 되는데, 괴물과 거인은 육체와는 별개로 자신의 '나'들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이지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여기는 외양을 껍질이라 여기는 위대한 거인과 괴물, 어떻게 보면 젠더를 통해서 진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여기나 봐요. 소실점 같은 느낌이에요. 젠더라는 소실점을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젠더를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를 통해 남을 보려 하지만, 결국 그 소실점 너머에 스쳐 보이는 것은 늘상 다른 그런 것 말이에요. 말을 하고 나니 부끄럽네요. 불가능하다는 자괴감 때문일까요?"

Posted by nami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권고마 2012.11.04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체 요새 무슨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거야

    • BlogIcon namit 2012.11.05 0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 생각 안함.ㅋㅋㅋ 생각은 늘 담겨 있는 것이고, 글은 그냥 흘러 나오는 것이고, 붙이고 자르고 수정하고 싶지만 또 귀찮아서 못하고,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우선 그냥 올리고서는 내버려두는 거고, 이렇게 보면 나는 자식 생기면 그냥 신경 안쓰고 내비둘 타입인듯-_-

  2. 김미정 2018.05.02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6시내고향에 글을올리고싶어서
    가입은했는데
    어떻게 어디서쓰는지를몰라서 여기저기해메다 이곳에 문의드려봅니다~어떻게하면될까요

20120911 나방.

걸 개 2012. 9. 11. 13:16

8시 53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담배를 한개피 꺼냈고, 라이터를 들었다. 그리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반절쯤 피웠을까, 목덜미 뒤로 괴이한 이질감이 엄습했다. 내 눈구멍이 앞으로 쏠려 있어서인지 깜짝 놀랐고, 마치 곤충의 신경반응처럼 허리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움찔,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나방이다. 나방이 창에 여러번 몸을 부딪혔다. 창을 넘어들려나보다. 그런데 한마리다.

 

종종 밤거리에서 봤다. 골목의 전등불 아래로 나는 나방, 끊이지 않고 배회하기를 여러번, 그렇게 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나방들이 자리잡고 있는 가로등을 지나쳐 있다. 득실득실하다. 꿈틀꿈틀은 아니다. 애벌레들처럼 포개져 있지도 않다.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정전기 전깃불이 튀어 그 작은 몸이 불타버릴게 두려워서인지 접촉하지는 않는다. 함께이지만 홀로 전등불 아래를 헤맨다. 거기에 나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늘 전등불 아래를 채우고 있던 나방들 중 한마리가 지금 홀로 창을 넘어가려고 애쓴다.

 

그렇게 많았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 단 한번도 부딪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나방들, 함께 날지만 서로의 간격을 지켜주며 홀로하던 나방이 지금 열리지 않는 유리에 몸을 들이민다. 그리고 홀로다. 어디를 가려는지, 왜 햇살이 창백한 이 아침에는 홀로 있는지, 다른 나방들은 다 태양을 향해 날기 시작했나. 왜 지금은 홀로 남아 있을까.

Posted by namit
TAG 글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98.04.25, 1998.05.25, 1998.06.25....... 2002.05.25, 2002.06.25, 2002.07.25, 2002.08.25....... 2004.10.25. IMF로부터 79개월, 매달 200만원 그리고 저금 통장에 찍힌 79개의 '송금'이란 글자를 읽고 또 읽었다. 두번, 세번, 네번째로 "1998.04.25 2000000 송금"가 새겨진 통장의 첫 페이지를 펴려 손가락을 움직이던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6년 전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말의 의미가 와 닿았던 그 날에도 손에는 12인승 버스의 열쇠와 이 통장뿐이었다. 비를 뿌릴 것 같던 하늘은 한 두방울 물방울을 흘렸고, 빗물은 통장에 자국을 남겼다. 검정색 글자는 점차 감청색 흔적으로 변해갔다. '6'이 '8'로 '5'가 '6'으로 변하는 과정을 물끄러미 봤다. 한껏 감긴 태엽이 풀리 듯 팔과 다리의 근육이 요동쳤다. 양손으로 통장을 접었고, 이미 다리는 은행 앞에 세워진 12인승 이스타나를 향해 교차하고 있었다.

은회색 97 연식 이스타나의 뒷 창에는 녹색테이프가 붙어 언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한 창을 붙잡고 있었다. 일종의 반창고가 덕지 덕지 붙어 상처를 가리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았다. 이스타나의 앞 범퍼와 뒷좌석으로 통하는 문에는 가리지도 못 할 커다란 긁힌 흔적들이 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뜀박질 속에 빗물이 튀고, 이음새가 헐거워진 갈색 로퍼는 들어오는 빗물을 막지 못했다. 로퍼에 묻은 회갈색 페인트와 상흔을 가리고 있는 녹색테이프는 왜인지 모르게 유사해보였고, 그 주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뒷자석에는 있어야 할 좌석 대신 간이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고, 침대위에 펼쳐진 두꺼운 이불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털들이 엉겨붙어 있었다. 6년 전에 개조된 차 내부에는 냄비 속에 들어가지 못한 라면 부스러기와 흘린 국물자국이 절묘했고, 언제라도 찍찍찍하는 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문을 열고 간이 침대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고, 습관적으로 또 한번 통장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내려 했지만 소매가 해져 빗방울을 닦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장 위의 흐릿해진 감청색 무늬들을 보자 "안돼, 안돼, 안돼."라는 작은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나왔다. 손을 뻗어 검정색 펜을 찾았고, 간이 침대 아래서 찾은 모나미 볼펜으로 선명하고 뚜렷하게 숫자를 새겨 넣었다. 25는 26이면 안됐고, 25여야만 했다. 0은 6개여야만 했고, '송금'이라는 글씨는 '솜긍'이어서는 안됐다. 6월 역시 8월이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힘줘 눌러 쓴 숫자는 모호하지만 뚜렷한 검정색을 드러내 갔다. 작업이 끝난 통장은 덕지덕지 땜질을 한 집 마냥 너덜너덜해졌다.

문득 굵은 빗소리가 차 안을 울리자, 나는 창 밖을 봤다. 차창에는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방울 한 구석이 터져 다른 방울과 합쳐지고, 부서짐을 계속했다. 거센 빗소리가 익숙해질 즈음 계기판 옆에 붙어 있느 사진을 쓰다듬었고, 사진 속의 두아이와 한명의 여자는 그를 보고 활짝 웃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피부는 굳어버려 딱딱한 돌처럼 된지 오래였으며, 손가락 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살이라기 보다는 껍질이 옳았다.

나는 6년간 가족을 이렇게 불러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라고 하루 세번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던가. 내가 전할 수 있던 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세번씩 하루 세번 이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애들의 이름과 여보의 이름은 깊은 동굴 속에 남겨져 있는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잊혀져 있었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미소는 분명 6년동안 마찬가지였다. 내가 간이침대 위에서 새우잠을 청할 때도, 용역업체에서 연락을 받고 아무도 없는 밤의 도로를 달릴 때도, 추운 겨울 날 관리직원이 없는 지하주차장을 찾아 들어갈 때도, 더운 여름 날 주차비 정산원이 출근하기 전에 한강변의 주차장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분명 그렇다고 믿어왔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이었다. 이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6년을 기다렸고, 고대해 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마찬가지로 고대해 왔던 전화다. 019-124-6370이 짙은 녹색으로 찍혀 연한 녹색의 액정 속에서 깜빡였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앞으로 전화를 받지 않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불과 두시간 전이었는데 너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예"라고 말했다. "강거갑씨, 오늘 8시부터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편의점 일 있어요." 전화를 끊고, 사진을 봤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에요? 가족들은 다 어디있는데요?" 라는 질문을 받은 나는 입술을 굳히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 때 떠났어, 아니 떠나보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어. 빚쟁이들은 쫓아오지 갚을 돈은 없지. 다 가압류당하고는 이혼서류 찍을 때 한 번 봤어. 그래야 편하데나 뭐래나." "술이나 한잔 해요." "술 먹은 적 없어. 벌써 언제 술먹었는지 기억이 안나." "바다에서는 조개구이에 소주가 최고에요." 가슴을 들이밀며 말하는 이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거부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앞으로 바다가 펼쳐진 야외에 조개구이 집이 있었다. 작은 봉고 버스는 힘겨운 엔진소리를 냈다. 나는 향긋한 구이 냄새를 맡았다. "배고파요, 얼른 먹어요." 차에서 내린 여자는 이미 저만치 가서 손짓을 했다. 조개구이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왜 만나러 안가요?" "뭘." "가족이요, 아까 보니 아직도 사진 붙여두고 있던데." "벌써 6년이나 연락을 안했어. 그렇다고 헤어질 때 다시 나타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애들도 있고, 보고싶지 않아요?" "웬걸. 6년동안 안 만난 친구한테 연락해 봤어? 거기다가 그냥 안보게 된 것도 아니고, 안좋게 끝난 관계 친구? 그만해." 한번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이 멍청한 년, 너같으면 찾아가겠냐. 아니 찾아갈 수 있겠냐. 매일같이 사진보면서 라면만 먹었는데, 그렇게 독하게 갚았는데, 그게 다 돌아가보고 싶어서였는 것도 상상 못하냐. 속죄야 속죄. "소주 하나요." 여자가 말했고, 곧 소주 한병이 상에 올라왔다.

"오랜만에 술 먹는다면서요. 우선 한잔 짠!해요." 술잔을 받아들고 투명한 액체를 빤히 바라봤다. 왜곡되고 뒤틀려 보이는 술잔 뒤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돌아가도 될까. 나를 기다릴까. 딴 남자 만났으면 어쩌지. 애들이 내 얼굴은 기억할까. 나는 술을 마셔도 되는 걸까.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서 빚 다 갚고는 뭐했어요?" "뭐하긴 일했지." "끝이에요?" "끝이지." "뭐에요, 술도 6년만이다, 담배도 안핀다, 무슨 성인군자 났네 났어. 뭔 재미로 살아요, 무슨 중이야? 신부야? 얼른 술이나 한잔 해봐요. 여기까지 와서 안마시면 그게 뭐에요." "이걸 마시면 안 웃을 것 같아." "뭐래, 누가 웃어줬다고. 주사 심해요? 술은 안약하게 생겼는데?" "너 말고 가족이." 라고 말하며 억지로 술을 입에다 털었다. 싸한 냄새, 눈물이 날 듯 했고, 코 끝이 찡했다. 구토감에 어떤 역겨움이 뱃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일종의 수치심과 모욕감이 엄습했다. 7년 전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던 그날 가족들은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가족과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다람쥐같은 애들과 부인의 눈이 감겼을 때 떠나야만 했다.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러 오신 예수님은 정말 성인군자다. 나는 내 죄를 대신하려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 양반은 참 위대했나보다. 빨간 딱지가 붙고 나서부터 부인은 교회에 열심히 갔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죄를 내가 갚겠다고. 이 술은 토해내야 한다. 나는 아직 속죄를 끝내지 못했다. 무엇도 누릴 수 없다. 아니 누려서는 안된다.  "먹고 가. 난 계산하고 나갈게."

"네?" 라는 물음을 뒤로하고 차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세상이 돌기 시작했고, 그날 나를 바라보던 가족의 눈빛처럼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심장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걷기 시작했다. 분명히 한 잔만 마셨다. 그렇게 여겼다. 내가 술이 이렇게 약해졌나,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버스의 뒷좌석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억지로 몸을 누이자 현란한 소리와 시끄러운 광경이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어두웠지만 윤곽은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피부 빛이 검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차 안은 더러웠으나 어떤 아릿하고 아련한 냄새가 났다. 나의 6년간은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완벽한 대칭을 이뤄왔다. 언제 어디에서 연락이 올는지는 몰랐지만 매일은 해야할 일로 가득 차 있었고, 통장에 '송금'이라는 글씨가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이뤄야 할 바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두가지 뿐이었다. '미안해'라고 세번 말하기와 라면이 가장 싼 가게. 몸의 피곤함은 내 죄를 나 스스로 사하기 위해서라며 자위했고, 정신의 피곤함은 느낄 새가 없었다. 벌레와도 같은 삶, 하지만 거세당한 기계, 송금이라는 달성의 황홀경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삶은 목표로 가득 차 있었다. 잘 살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리고 잘 살아갈 것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여겼다. 2004년 10월 25일까지는 그러했다. 삶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완벽하게 그려진 동그라미는 단 한번도 찌그러지지 않았고, 그 자체로 완벽했다. 원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없이, 늘 항상성을 유지했던 삶은 그날 더 이상 송금이라는 말이 찍힐 필요가 없던 날부터 요동쳤고, 이제는 찌그러지고 터진 기괴한 도형같았다. 그리고 이젠 그 중심중 하나였던 이스타나에 그리고 나의 중심에 모르는 여자가 올라타 있다.

흰 목 위로 얼굴의 표정은 당당했다. 아름다운 젖가슴은 지나치지 않게 부풀어 있었다. 배꼽 아래로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술잔이 꿀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여자와 살을 맞대고 있었고 좁은 간이침대가 요동쳤다.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길 원하는 여자는 아닐까?'라고 의심할 틈 없이 여자는 내 동그라미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격정의 순간 힘을 잃는 남자처럼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대칭의 원은 한없이 쪼그라들었고, 마찬가지로 '몸을 내놓고 값을 쳐주기만을 원했던' 나는 욕망의 저잣거리를 지나쳐 속죄의 길로 향하는 십자군의 태도를 버렸다. 금기는 깨졌고, 사진 속의 가족이 궁금했다. 나를 혹사시킬 때만이 존재했던 동그라미는 부서져버렸다. 나의 속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번개소리가 울렸고, 옆으로 큰 물웅덩이가 생겼는지 정면의 차창에 파도같은 물보라가 일었다. 크게 흔들린 차체에 깜짝놀라 나는 잠에서 깼다. 흔들렸고, 다시 흔들렸다. 언제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주병이 바닥을 뒹굴었고, 1998년 4월로 제조일자가 찍혀 있었다. 다시금 전화 벨이 울렸다. "강거갑씨 일 안와요? 8시 반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이제 일 안가요.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참고서적 :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저, 이윤기 역, 열린책들.

 

가감없는 지적질을 원합니다. 글쓰기 형식이든 내용이든 문체든 수사든 맞춤법이든 뭐든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namit
TAG 글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권고마 2012.09.03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소설을 썼어? 내가 사람은 고생을 해야 글을 쓴다는 말 따위 허튼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니가 한동안 고생을 해서 그러냐 어째 이런 소설을 써가지고 또 이전에 썼던 글과는 판이하게 다른 글을 이렇게 떡 하니 올려가지고 나는 도무지 쓸 줄 모르는 소설을 써서 올려가지고 아 내가 고생을 해야 되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냐 야이 ㄱㄴㅍ

  2. 아애 2012.09.04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지적은 제목이 없다는 것이다.

    • BlogIcon namit 2012.09.04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목은 정하지를 못했음;;;;;;;;;;;;사실 선정된 주제어는 '섹스'였지만 내가 적은 이야기의 중심은 '섹스'가 아니라 '나'라서.ㅋ

마지막 학기가 시작점을 찍었다. 나는 2005년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올해는 2012년이고, 어느새 8년을 채워가고 있다. 이 학교가 애들을 못 괴롭혀서 불만인지 늘상 왜이렇게 개강을 빨리하냐며 ㅆㅃㅅㄱ대 라고 욕했지만, 설마 개학공포증에 걸린 고테츠와 같은 마음일쏘냐. 고테츠처럼 노는 데에 열정이 넘치지 않는 나로서는 반갑기까지 하다. 개강은 즉 종강이니, 그 지나가는 시간의 무게를 벅차다고 여겨기기도 했지만 이제껏 나를 거쳐간 시간이 가져다 준 배움을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의 무게는 기름기가 쪽 빠져 다이어트 당해버리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말 누가 했는지 거참) 이미 대학교에서 9번째 개강 첫째날이지만 이렇게 또 왔고, 또 다시 색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처음이라는 말이 주는 설렘은 긴장이라는 다소의 압박감이 가미되어 있다. 처음은 언제라고 화사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동시에 그 너무 화사한 빛깔에 나는 압도되어 그 무게어 짓눌려버리는 느낌적인 느낌. 감각적인 감각.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두개의 말뚝을 박아 선을 그어버린 개강이라는 말과 종강이라는 말. 오늘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말이 무색하게 만드는 찐한 색채를 담은 하나의 시작점인 개강. 그렇게 결국 미래일 것이라는 기억의 무한에서 과거였을 것이라는 망각의 무한으로 화사한 색채도 빛깔도 무색해져 갈터이다.

 

이번 학기에는 본의 아니게 글쓰기 수업을 두개나 청강하려한다. 반은 설렘 반은 긴장. 개강이 주었던 이제까지의 설렘과 긴장이 성적표에 타인이 "좋아요!"라고 도장을 찍어주기를 바람에서 나왔다면, 이번의 설렘과 긴장은 분명 내가 잉크를 뿌려 편지를 건내주려는 시도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여태의 긴장은 나의 것이 평가자에게 좋게 보여지기를 욕망하여 있었다면, 이번의 긴장은 나의 것이 나에게 좋기를 욕구하여 있다. 배가 고픈 아이가 칭얼거리다가 엄마의 젖을 빨듯이, 한겨울 바람의 매서운 칼날을 맞으며 홀로 걷는 한 장년이 옷깃을 여미듯이, 따땃한 봄 햇살 속에서 노인이 잠을 이기지 못해 흔들의자를 찾듯. 내 것이 좋기를 바라는, 하지만 타인의 평가는 중요치 않은 그런 단순한 느낌적인 느낌, 감각적인 감각.ㅋㅋㅋㅋㅋ

Posted by nami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Nangbi 2012.08.27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강사 한번 껄쩍지근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