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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려서 '무엇이든 주는 나무'라는 짤막한 동화를 읽었다. 동화책이라 했지만 실은 그림책이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었지만 노란색이었고, 줄기는 갈색이었지만 동시에 붉은색이었다. 나무가 너무 예뻤고, 그래서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당시 그 나무를 좋아했던 것은 확실한데 그 이야기를 좋아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니 나무 삽화를 좋아했던 게 아니고 실은 그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기억이야 늘 변하니까 뭐. 나무는 아이와 함께 커나갔다. 나무는 아이에게 늘 물었고, 아이에게 늘 베풀었다. 나무는 늘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야 무슨 일 있니? 그럼 아이는 득달같이 말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에는 배가 고프다며, 여름 날에는 너무 덥다며, 여느 날에는 그네가 타고 싶다며 귀엽게 .. 더보기
장미의 이름 매일 같은 코스다. 블로그에 무언가를 적고 앉아있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적고싶으니까 이런게 아니라 과제같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급작스럽게 떠오르는 상념들을 낚아채서 남겨놓고 싶은 욕구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보는데 이번에는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의 작품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백 마디 하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낫기 때문에 적지 않겠다. 라고 적어두지만 실은 뭔 이야기인지 다 알아먹을 수가 없다. 읽다보면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도원을 상상하게 되고, 수도원의 도서관에 있는 책이 궁금할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시의 생각들과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약초 이름부터 별 것들이 다 나오는데, 이루 다 나열할 수가 없다. 당시 교황과 황제.. 더보기
어떤 염치. 붉은 저녁의 태양은 크다. 태양이 원래 하얀색인지도 모를일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유리로 덮인 마천루가 들어섰고, 그 사이로 새하얀 태양에 눈이 부신다. 터져나오는 빛과 그 뒤로 붉은 하늘, 눈이 부셔 태양을 바라볼 수가 없다. 하얗게 타들어간다. 태양의 빛줄기에 타들어가는 건물들 사이를 헤치고 나서는 버스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봤다. 눈이 부시다고 생각할 찰나에 어둠이 깔리고, 익숙해질 즈음해서 다시 눈이 부시고, 다시 어둠이 깔리고 눈이 부시고, 어둡고 부시고, 그러다 보니 집에 왔다. 염치가 없어 부끄러운 나는 얼굴을 가릴 틈도 없다. 더보기
9월자 글쓰기 - 젠더. 친하고 싶어서 보여주려 하는데, 너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끄고서는 손을 들어 오징어잡이 배를 가리켰다. "난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너를 사랑해." 그이는 이 세상에 있는 오징어의 수만큼 나를 사랑한더랬다. 그이는 동해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오징어잡이 배가 저만치 보이기도 했고, 그이는 어려서 오징어잡이 배에 올랐다고 했다. “다른 단어는 필요치 않아”(라고 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둠 속에서 그이의 몸을 더듬어 손을 찾았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물었다. "차라리 모래알이라고 하지?"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그이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힘을 주어 대답했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멀리 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한 곳에 .. 더보기
20121017 이상한 날이다. 이상한 날이었다. 몸에 힘이 없었다. 정신은 하늘하늘 팔랑거렸다. 사고가 사고처럼 우발적으로 터져나갔다. 한시도 그치지 않는다. 올라오는 사이다 기포와 마찬가지다. 이 상념이 나를 감싸돌고, 급기야는 물까 두려워 내 안에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주방의 식탁에으로 향했다. 잔을 가득 채운 사이다가 보여, 잔을 쥐어 들었다. 잔 겉면의 물기가 어렴풋하게 눈에 어려 온다. 차갑다. 차가운 기운이 손가락과 손바닥을 타고 오른다.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이가 많이 시리다. 연달아 목이 타오른다. 기포가 나갈 곳을 찾아 헤매다 구멍을 찾았나 보다. 눈이 뜨거워진다. 코 끝이 얼얼해진다. 뜨거운 눈으로 더운 눈물이 떨어진다. 맹한 코 끝이 얼얼하다. 익숙해질 즈음 잠시 잠잠했던 상념이 다시 솟아오른다. 이제는 상념.. 더보기